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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 - 조선 선비들이 찾은 우리나라 산 이야기
나종면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선비를 따라 산을 오른다고 하니까, 전혀 고전에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도 상당히 솔깃했다. 과거 선비들이 산을 유람했던 기록이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의 명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산 근처까지 차로 이동하고 그 이후에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고 하지만 그 때는 집에서 나서는 것부터가 등산의 한 일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는 때이니 한 번 산을 오르는 것이 오죽이나 힘들었을까. 짐을 들어주는 동자 한 명을 앞세우고 몇날 며칠을 걸려 다녀오는 길이어야 하니, 정말 선비쯤은 되는 사람들이나 다녀올 수 있는 것이었을 게다. 또한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정이니 한 번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유람을 금방 다녀올 수도 없었을 것이고.
이 책은 그 당시 우리가 알만하건 알지 못하건간에 여러 선비들이 쓴 글이 등장한다. 번암 체제공,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면암 최익현 같은 이름난 선비들뿐만 아니라 수당 이남규, 삼연 김창흡, 해좌 정범조, 미수 허목, 아계 이산해, 여헌 장헌광, 읍취헌 박은, 담헌 이하곤, 지산 조호익 같은 나는 모르는 수많은 선비들이 산을 유람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선비들이 글을 남긴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글이 있기에 지금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때에, 우리 선비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내용을 보면 간혹 각 산의 높이가 밝혀져있는데 지금으로선 그다지 산이라고 부를 수 없는 높이의 산(도고산 - 482m)을 가리켜 군사적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으로선 산이라고 취급해주지도 않을 만큼 야트막한 산도 그 당시 선비들은 산의 운치와 정취를 제대로 음미했을 것을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등산에도 ‘풍요 속의 빈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어머니께서 등산에 취미를 붙이셔서 등산용품을 사들이시는데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등산용 겉옷은 물론이고 땀을 흘리고도 금방 배출이 되어 춥지 않게 해주는 등산용 내의는 가장 낮은 것이 5만원 정도이다. 그것도 상의만. 상황이 이러하니 겉으로 봤을 때, 등산용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은 민망해서 등산을 하러 갈 수나 있을까 싶다. 내가 산에 오른 경험이라곤 까마득한 옛날에 그런 장비도 없이 수학여행나 어디 모임에서 몇 번 오른 게 등산 경험의 전부인지라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지만, 가끔 기분 전환 삼아 가고 싶을 땐 정말 난감할 것 같다. 장비 때문에 사람이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나다니... 어쨌든 과거에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게다. 산은 산이여서 그저 산을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받아들이는 그런 어머니 같은 품을 가졌을테니. 게다가 선비들은 산을 오르는 것을 그저 단순한 기분 전환의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산은 속세와 단절된 장소, 그러니까 이계나 도원경과 같은 선비들이 추구해야 할 공간이었기에 산이 보여주는 정취도 단지 좋은 경치 그 이상이었다. 도를 얻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나 자신의 갈 길을 추구할 수 있는 인격 수양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오대산기」, 「운주사기」, 「유설악기」, 「두타산기」 등 옛 선비들이 남긴 산행기들을 보면 이런 글이 남아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 많이 있었다. 일단 모르는 산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 새로웠고, 그들이 이런 목적으로 글을 남겼던 것이 새로웠고, 게다가 산행이 인격 수양의 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새로웠다. 내가 가본 산은 이 책에 등장한 산 중 유일하게도 설악산뿐인데, 그 당시에는 금강산에 밀려 설악산의 아름다움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글귀를 보고서도 상당히 놀라웠다. 금강산에 갈 수만 있었다면, 지금도 그러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괜히 내 마음을 끄는 산으로는 도고산이 있는데,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에 있는 높이 482m의 낮은 산이지만 상당히 운치가 있다. 아계 이산해가 쓴 「운주사기」를 보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다는 운주사도 궁금하고, 도고산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