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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스테이크
황진순 지음 / 발해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어쩐 일인지 계속 황진순 작가의 로맨스 소설만 보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 중 『반지』로 처음 만나고 나서, 그녀의 작품을 계속 보고 싶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구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만 흘러버렸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가봤는데,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그 뒤로 몇 번을 더 기웃거린 후에야 바라고 바라던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그녀의 이야기는 깊었다. 아주 깊은 바닷속, 너무 깊어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칠흑 같은 바닷속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와 그의 이야기가 사실은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여주와 남주의 대화가 참 깊어서 나름 따라가기는 했지만, 내 취향이 달라졌는지 참으로 쉽지 않았다.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랄까.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버지에게서 냉대와 무시만 받아온 남자 고등학생(서강우)이 2학년 때 아이들을 패고 나서 바람을 쐬러 부산까지 나갔다가 라면집을 운영하는 한 여자(나미선)를 만난다. 나이는 4살 정도 연상인 그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실직한 친구에게 재정을 맡겼다가 들고 튀는 바람에 옥살이를 하게 되어 혼자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까칠하게 구는 사람, 상대도 안 해주는 그녀가 왠지 그에게는 틱틱거리면서도 챙겨주게 된 것은 첫 눈에 알아봤기 때문일까.
너무 극적인 만남이 휘리릭 지나가버려서, 그들의 입장이나 심리가 쉽게 파악되지 않았었다. 물론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진행되는 로맨스 소설의 특성답게 나중에서야 남자의 심리가 드러나 어안벙벙해지는 신선함을 얻을 순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었을까 하는 의문점도 갖게 된다. 간략하게 말하면, 미선이는 가볍게 말한 것 같은 ‘배부른 소리하지 말고 대학 가지 않으면 우리 가게에 오지마!’,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이지!’, ‘수업 시간에는 우리 가게에 얼씬도 하지 마!’, ‘빚 갚아주겠단 소리를 할 거면 어서 나가!’ 란 소리에 냉큼 행동에 옮겼던 강우는 실은 미선이가 만나주지 않을까봐 불안에 떨면서 행동에 옮겼다는 것이다.
열여덟에 만나 십 년간 사랑에 빠진 줄 알았더니만 실은 언제 자기를 내칠 지 몰라 불안에 떠는 생활을 더 오래 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는 행동에 나서기 시작하는 강우는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제서야... 물론 자격지심에, 없는 살림에, 누군가를 만나 행복하고 결혼하는 삶을 꿈꿔보지 않은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억울해서, 제 피폐해진 삶이 너무 억울해서 그렇게 십 년동안이나 강우를 나몰라라했던 미선이, 이제 그에게 다가간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아마 이 만큼의 시간이 딱 필요했을게다. 물론 좀 더 빨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해하고 공감했다면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서로에게 사랑이었다는 것을 일찍 알았겠지만, 이것도 좋다. 그들에게는 이것도 나름의 사랑하는 방법이었을까.
이제 사랑을 알고, 그 행복을 찾고자 한 걸음 디딛는 미선의 행동이 멋지다. 제 남자를 지켜내려는 그녀의 말 속에서 강우는 뜨거운 사랑과 감동을 받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아끼며 하루를 이어가겠지....
역시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황진순 작가다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