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그 원색의 땅에 입맞추다
임명자 지음 / 다밋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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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정열의 나라,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이 원래는 없었다. 평소에도 여행에 대한 로망이 없던 인간인지라 그런 책을 가까이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내가 생각하는 라틴 아메리카는 그저 덥고 비가 많이 오는 열대우림의 나라일 뿐이었다. 아, 올해 남아공월드컵을 개최했으니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있어 축구 열강의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외에는 내게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었으니, 지금 와 생각해봐도 너무 무심했다. 그런데 연결시켜보자면 정말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가득한 나라들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먼저 대학교 때 유물 전시회도 가서 레포트를 쓴 그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 잉카 유적이 거기에 있고, 2012년에 행성들이 일렬로 나열되면서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예언한 마야 문명의 자생지도 그곳이었고, 월트 디즈니의 영화 「쿠스코? 쿠스코!」도, 신비의 제단 마추피추도 라틴 아메리카이니 솔직히 내 관심을 끌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저 귀찮아서 안 보려 했을 뿐. 더구나 외계인 설을 더욱 부채질했던 나스카 라인도 이곳이니 정말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 들어차있는 곳이었다. 그 귀중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숨쉬는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것을 이 책으로 시작하려 한다.

 

이제껏 본 여행에세이는 별로 없긴 하지만, 이 책만큼 저자가 독특한 책은 없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쓴 책이나 몇 권 읽고 말았는데, 이 책은 손녀딸까지 둔 할머님께서 동료 다섯 분이랑 같이 세기의 여행을 계획하셨단다. 여행 당시에 틈틈히 경로나 생각을 써두었던 것을 정리하고 보니 사장시키기가 아까워서 출판하게 되었다는데, 워낙에 시를 쓰시던 양반이라 그저 끄적인 정도의 일기는 아니다. 맛깔스런 어휘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색의 세계를 덩달아 구경할 수 있을게다. 모든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佛家의 수행을 하시면서도 가톨릭 일색이고 화려하고 멋진 성당이 유명한 지역에 와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감상하시는 것도 꽤나 신기했다. 타종교에 대한 편협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불가의 가르침을 받으시면서 예수님에 대해서도 아시는 것이 조금 신기했달까. 처음엔 인연이니, 전생이니, 온갖 법어가 등장해서 비불교도인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싫어하기보다 존중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솔직히 신을 믿지 않는 ‘불교’를 종교라곤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는가. 그래서 저자도 ‘불교도’라고 하지 않고 ‘불가의 수행’이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가의 용어가 종종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한국에서 미처 내려놓지 못했던 욕심과 집착을 이 머나먼 땅, 라틴에 와서 그런 집착을 내려놓게 되었다고 다시금 자신을 반성하는 저자의 모습은 마치 구도자, 그것과도 같았다. 멀리 있어야 가까운 것이 잘 보이는 것인지.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정리해내셨다. 여행은 이래서 좋다고..... 그런데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의 달빛 아래서 내 안의 허상인 그림자를 바라보는 허허로움,

낯선 사람들이 걷는 길가에 낮게 핀 이름 모를 들꽃을 눈여겨보는 경이로움,

낯선 사람들의 일상에 섞여 미소로 주고받는 따듯한 눈인사. 낯선 사람과 악수를 건넬 때 전해 오는 온기,

낯선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그 맑은 눈동자.

어느 곳에서든지 이 모든 것이 하나씩 내게 와 그림자 없는 그림이 되었다가 다시 여백을 만들곤 한다.

- p. 181


 

여행을 조금 귀찮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나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굳이 여행이 아니라도 허허로움과 경이로움과 따듯한 눈인사, 온기, 순진한 재잘거림과 맑은 눈동자를 만나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굴색도 같고, 머리칼 색도 같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것을 먹지만 나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낯설다. 지나가면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이기에 나는 여행을 안 가도 이름 모를 풀꽃에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고 감사한 눈인사를 받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여행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이를 만나고 싶어서 낯설음 속에 나를 던져두고 싶은 것이라면 충분히 생각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가능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일상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물론 여행은 단지 그것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니긴 다녀야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녀의 저 글귀를 보고 나니까 일상을 내가 얼마나 무심하게 지나치곤 했는지가 떠올랐다. 괜히 기분 나쁜 것도 없는데 누군가 말을 걸거나 물으면 퉁명스러운 말로 대답해주었던 그 옛날, 나는 너무 방어적이었다. 위험으로부터 경계해서 방어하는 것도 좋지만 좀더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소통한다면 충분히 일상의 경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소득은 많다. 마야와 아즈텍의 나라 멕시코에서 시가 무는 모습이 멋진 그의 나라 쿠바,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는 아르헨티나, 이과수폭포가 유명하고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오 데 자네이루가 있는 브라질,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소 이따이쁘가 있는 파라과이,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가  있는 칠레, 나스카 라인과 마추피추의 나라 페루까지 한 번에 볼 수 있어 유익했다. 그 멋진 여행을 시간과 돈과 노력을 그리 많이 들이지 않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아직은 직접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후에, 할머니가 되어서라도 가보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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