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김열규 지음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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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란 부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듯이 도깨비가 곧 한국인의 내적인 욕망을 투영한 대상이라는 말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옛날 이야기 속에나 등장하는 도깨비가 실존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지만, 그런 괴물의 존재를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온 이유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 의아할 정도로 김열규 교수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아귀가 들어맞았다. 뭐, 살기도 바쁜데 도깨비 같은 상상의 괴물에 대해서 굳이 논할 것은 무어냐고 되묻는다면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우리 민족의 과거의 모습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만큼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 어이가 없었다. 우리 선조들이 남겨두신 문헌이나 구전된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의 열망과 소망, 문화가 담겨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정말 우리 조상들은 도깨비란 괴물을 왜 만들어냈을까? 도대체 그런 이야기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이택광 교수의 『영단어 인문학 산책』이란 책을 봤었다. 그 책을 볼 때만 해도 이 책과 관련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이제 와 보니 이 책과 그 근본이 비슷하다 여겨진다. 그 책은 영단어에 숨겨진 의미의 변천사를 통해 과거 영국의 중세 시대, 그 때쯤의 사회 모습이 어떠한지를 나름 알려주는 책이었다. 물론 처음 볼 때는 유래되어 인용된 라틴어나 독어, 프랑스어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까 그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중세 때는 겁에 질린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개화되지도, 전깃불이 환하게 밝히지도 않았던 시대인지라 장원을 벗어난 숲은 중세인들에겐 공포였다는 것이다. 그런 공포스럽고 으스스한 사회 분위기가 영단어에 박제되어 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다 18, 9세기가 되면서 그 단어에 들어가 있던 으스스한 의미는 사라지고 다른 좋은 의미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어휘의 의미가 달라진 것처럼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만 싶었던 우리네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장난질이나 치고, 지나가는 과객을 붙잡고 씨름이나 한 판 하자고 달려들다가 지고, 도깨비불로 유혹해서 빙빙 돌다가 혼절하게 하고, 효심이 깊거나 착한 사람에게 뜬금없이 도움을 주는 등 익살스럽거나 해괴하거나 인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도깨비는 한 가지 유형으로 딱 정의된다기보다는 여러 모순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인’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정의스럽지만 어딘가 욕심꾸러기고 마구 해코지를 하고 싶으면서도 익살스러운 그런 자유스러운 모습, 그것이 ‘한국인’이 원해왔고, 간직하고 있던 모습인 것이다. 도깨비이야기가 문헌에 등장한 것이 까막득한 옛날인 삼국 시대부터였다고 하는데, 그 시기부터 우리는 바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우리의 욕망을 그렇게나마 해소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서양보다도 훨씬 현명했던 것이 아닐까. 인간으로서 차마 해선 안 될 행동을 몰래 하기보다는 이야기로나마 표현해내고 발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미련한 사람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도깨비가 저질렀다는 수많은 장난질을보자면 영특하고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많은데, 그것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는 워낙 영특하고 재치가 넘쳤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아, 그런 민족성이 우리 안에 있구나. 다양 복잡하면서도 재치와 익살맞은 모습이 우리 한국인의 정서라면 이렇게 어렵고도 힘든 시기도 익살과 재치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조금은 위안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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