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러브 차일드....... 사생아
 
소설의 제목치곤 상당히 암울하다. 별 생각없이 ‘러브’란 글자가 들어가서 그리 어둡지는 않을 거라 여겼는데, 전혀 아니였다. 제목의 뜻이 ‘사생아’란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을까 자문해보지만 진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생아...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니까 소설의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표지로 봐도, 언뜻 보는 제목만 봐도 결단코 소설의 내용을 유추해볼 수 없는 이 소설은 첫장을 넘겼을 때부터 독자를 경악으로 몰고 가기 바쁘다. 대충 본다면 이제 쓰레기하치장에서 재활용되는 ‘쓰레기’와 안되는 ‘쓰레기’를 구별해서 버리는 과정처럼 보이는 일련의 이야기가 사실은 ‘공식적으로’ 60대 노인들을 ‘폐기’하는 과정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 속 이야기가 끔찍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다 늙었다고 부모를, 조부모를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고 무시하거나 구타를 일삼는다든가 여행가서 버리고 온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연일 우리의 뉴스거리가 되는 현실에서 말이다. 처음 그런 뉴스를 들었을 때는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너무나 비일비재해서 듣고 있는 우리도 무감각해진지 오래다.
 
누구에겐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다른 누구에겐 출근길에 약간 불편함 뿐이라면 사회적인 공감대는 결코 형성되지 않는다. 누구는 집이 철거되어 당장 오늘밤 머리 누일 곳조차 없는 상황이지만, 누가 불에 타 죽어도 별 다른 감흥을 못 느끼고 별나라 이야기로 들린다면 이를 어찌 해야 할까. 이것이 단순히 생활이 바쁘다고, 그것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가볍게 무시해도 좋을 일일까. 그나마 이것은 같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이조차 그렇다면 저 멀리 떨어진 아이티나 소말리아에서 벌어지는 진흙쿠키나 아동성매매 따위는 무감각한 우리에게 어떻게 들릴까. 이 소설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다. 때는 가상의 미래, 돈이 있어서 노인의 보험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돈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은 국가에 귀속되어 민간인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우미로 파견을 나가야 한다. 그러다 ‘공식적으로’ 60살이 되면 재활용 심사를 거쳐서 폐기되어야 할지, 계속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해야 할지 평가받아야 한다. 만일 탈락된다면 ‘매립’되거나 ‘소각’되거나 ‘익혀져서’ 다른 가공품으로 재탄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이는 고령화사회가 되고 저출산이 가속화되면서 경제논리에 맞지 않아 ‘공식적으로’ 60살이 되면 어떻게든 사라져주길 기대하고 만든 시스템이다. 돈이 있어서 보험금을 낼 수 있거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딱 무전유죄가 성립되는 사회이다. 지도그룹에서는 젊어질 수 있는 온갖 비법을 연구하고, 상층부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고, 중산층에서는 무상으로 제공받았던 노인을 마치 가구나 노예처럼 부려먹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그런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하층민들의 이야기는 사실 침착하게 앉아서 읽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부분은 경악하며 어느 부분은 찔려가며 그렇게 한 달음만에 다 읽어버린 소설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비인도적인 모든 사람들이 - ‘수’를 유기하는 젊은 부부, 숫자로 이름붙여진 모든 사람들, 재활용 심사하는 공무원들, 마리 아빠, 지도부, 시인 - 사실은 모두 내가 될 수 있었으니까, 아니 나였으니까. 멀리 가서 찾지 않아도 된다. 아이티나 중국에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열악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간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정심을 발휘하고 모금함에 돈을 집어넣을지라도 우리 주변에 상시 있는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진짜 심각한 현실이니까. 
 
철거민들, 노숙자들, 외국인노동자들, 장애인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노인들... 그들에게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가. 내게 특별한 이익이 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으면 그다지 별 상관하지 않을 사람들이 그들일 텐데. 평생 가도 그들과 말 한 번 섞어보지 않고 죽을 텐데. 그런 무관심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피해받지 않는 합리적인 삶이 아니라 말 없는 폭력을 휘두른 삶이었고, 눈앞에서 사라져달라는 기원을 담아 침묵으로 시위를 했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침묵은 외면이고, 거절이고, 냉정이고, 거부이고, 결국은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소각되면서 매립되면서 ‘폐기’되어진 많은 노인들이 꼭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반항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선 처음에는 기계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노인들이 간간히 터트리는 비명이나 단말마가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저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생겨나는 작업 소음이라고 여겨질 뿐이었으니. 솔직히 충격적인 소설이고 끔찍할 따름이다. 하지만 왠지 눈을 뗄 수 없는 마력도 지닌다. 양심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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