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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옻칠이라고 하면 어릴 적 외가에서 본 반짝이는 조개 껍질로 만든 장롱이라고 막연히 이해했을 뿐, 실제로 배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옻칠이 그리 아름다운 줄도 잘은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우리 한국에 옻칠로 된 뛰어난 작품들이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선 나부터가 다른 미술작품에 비해 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유구한 옻칠의 역사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안목과 재능을 가진 후손들이 없어 이제는 이웃나라 일본에게 그 위상을 넘겨주어야 하는 비운의 나라일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세계의 유래가 없는, 건물 전체가 옻칠로 된 메구로가조엔을 다시 복원한 예술가, 전용복이 있다.
일본에 끌려갔던 많은 조선 옻칠장이들이 노역으로 만들어낸 메구로가조엔은 대중에게 고급 문화를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연회장이었다. 세계에 그런 유래가 없는 옻칠로 건물 전체를 다 칠한 건물로 목판화나 일본화, 옻칠, 나전까지 모든 예술을 총망라해 전시된 그런 공간이되 대중에게 공개된 개방적인 공간이었다. 연건평 8천여 평, 객실 200여 호에 바닥 길이만 해도 2킬로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호화 연회장은 이제 세월의 더께에 바래지고 떨어지고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옻칠만 해도 습기가 차면 다 들고 일어나는데 하천 옆에 반지하에 위치한 건물이 습기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고, 식당으로 쓴 방의 천장화는 그을음과 기름으로 때가 끼여있기까지 했다. 시내 노른자위에 위치해있는 메구로가조엔이기에 건물을 헐기로 하고 부지만 팔아도, 혹은 비즈니스센터 하나만 건설해도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는 장소였는데 창업주측에서는 그 건물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선대의 뜻을 받들어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예술적인 공간을 헐고 싶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복원해갔다. 총 공사비가 1조 원에 달했고, 미술품 복원에만 350억 원 정도가 들었던 것. 단지 예술만을 추구하기에는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하지만 그 명맥을 잇기 위해 그런 노력을 들였는데, 우리가 주의깊게 봐야할 부분이 바로 여기다. 일본 옻칠 장인들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일본 예술사에 한 획을 차지하는 메구로가조엔을 고작 이름도 없는 한국인 장인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게 정상일까. 그런데 아니였다. 그의 열정과 꿈과 이상을 녹아들어간 자료를 보고 그의 말을 듣고 돈에만 빠삭하게 알고 있는 실무자들까지 모조리 감동시켜 그가 복원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가 세계적인 옻칠 장인이 되는데 발판이 되어준 사건의 시작이다. 3년 기간에 5천 여점이나 되는 옻칠 작품을 복원했고, 불과 3개월만에 2천 점이나 되는 일본화나 목판화도 복원해야 했던, 그리고중간 중간 순수창작품도 제작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전용복이 있을 수 있었다.
순수 옻칠은 알지도 못했고, 카슈라는 옻칠 흉내낸 조잡한 기법만 알고 있던 전용복이 거대한 건물 하나를 복원해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수 밖엔 없었다. 일본의 옻칠 장인들을 하나 둘 찾아가서 자신의 기법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기법을 배워오는 등 그런 수고로움을 다 가진 후에야 그는 진정한 옻칠장이로 태어날 수 있었다. 어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일을 맡았을까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그의 열정과 혼이 담긴 일이기에 그는 그렇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 하는 일은 시작부터가 힘들었다. 비자 발급부터 복원작업을 하는 장소 물색과 연구소 설립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한국에서 데려온 기술자들도 자긍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억지로 끌려왔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 정말 힘든 하루였다. 손찌검도 하게 되고 아예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뭘 그리 열심이냐고 핀잔을 주던 사람들이었지만 초지일관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일을 해냈다.
그러면서도 몇몇 대회에 출품하기도 하고, 다른 일도 맡아서 했는데 그 중에 압권은 엘리베이터에 금속옻칠을 한 일이다. 수많은 기술진이 포진한 엘리베이터사와 대결해서 승리해 아주 멋진 창작품으로 그가 해냈다. 금속에다가 옻칠을 하려면 고온에서 말려야 하는데 처음엔 그 크기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아예 가마를 만들어서 엘리베이터를 굽기 시작했다. 미술관으로 운행되는 엘리베이터에는 세 마리의 해태를 그리고, 호텔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에는 신혼부부를 연상케 하는 암수 공작 두 마리를 그려넣었다. 여기에 응용해 나중에는 옻칠시계에도 손을 대는데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 안 할 수가 없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명예와 돈이 아니라 과거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아름다운 옻칠 전통으로 현재와 접목시켜 더한 아름다움을 발굴해낼 수가 없는갸 하는 것이다. 결단코 쉽진 않겠지만 전통이라는 건, 문화유산이라는 건 현재에까지 끊임없이 사용되었을 때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그는 오늘도 쉬지 않는다. 세계인이 옻칠을 아주 편히 사용하는 그 날까지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