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 바보 엄마 윤정희의 사랑 이야기
윤정희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여서 : 바보 엄마 윤정희의 사랑이야기
여덟 식구가 우탕탕하고 하루 종일 시끄러운 곳, 바로 바보 엄마 윤정희 씨의 가정의 모습이다. 스스로를 바보 엄마라 부르는 그녀는 자신의 아이 여섯뿐만 아니라 공부방에 들락거리는 스무 명 남짓되는 아이들에게도 엄마이다. 편부모 밑에서 살거나 조부모 밑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이 무료하게 있는 것을 보곤 그들을 모아다가 놀아주고 공부도 가르쳐주는 일을 하다보니 그렇게 자식들이 많이 생겨났다. 더불어 형편이 어려운데도 서류 제출하기가 복잡해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많은 가정에게도 여러 민원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노릇도 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쉼 없이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기에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장애아복지관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그 아이들을 제 아이처럼 사랑해주고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던 천상 엄마였다. 제 배 아파 아이를 낳지도 않았던 철모를 시절의 일이었다. 그런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친청 엄마의 역할이 컸던 탓도 있을게다. 짬이 조금만 있으면 어르신들을 모셔다가 음식도 대접하고 소일거리 삼으시라고 공간을 만들어 장구도 가르쳐드리는 등 외로운 노인들을 섬기는 일을 수년 간 해오셨으니 그것을 보고 배운 그녀가 봉사일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래서 결혼도 안한 처자가 복지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도 말리지 않았던 것이겠찌. 그런 그녀의 일상을 바꾼 것은 뜻밖의 부름 때문이었다. 친구가 불렀던 자리에 나가보니 웬 커다란 남자가 앉아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데이트나 남자에 대한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던 그녀에게 맡겨두었더라면 아직까지도 시집가지 않고서 봉사일이나 줄창 해댔을 텐데 별다른 감정없이 좋게 봤던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한 이후로, 장애아봉사일을 낯설어했던 그 남자가 복지관까지 찾아오면서 일이 크게 번졌다. 처음엔 떨떠름하던 것을 아이들이 척척 와 안기는 기쁨을 알게 되니 그 남자는 자신보다도 더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기 시작했다. 애절한 연애감정은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그녀도 그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고~ 그녀를 공략하기 위해 친정엄마에게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남자는 아예 친정엄마의 아들이 되어 완전히 한통속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결혼하고 그녀의 바보 엄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결혼한 그 남자의 이름은, 김상훈. 후에 목사로 부름받게 되는 사람이다.
몇 억쯤은 예사로 아는 건축가의 사모님으로 잘 나가던 윤정희 씨의 삶을 보면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오르막 내리막이 극적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미리 만들어놓은 것처럼. 아예 봉사자로, 바보 엄마로, 목사 사모로 살도록 운명지워놓은 것처럼 앞길이 정해져있었다. 전도사로 한창 신나게 일을 하던 중 몸이 무리를 해서 세 번이나 유산을 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살갑게 대해주는 남편은 기도로써 준비를 해보자고 하고, 입양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운명지워진 것처럼... 그리고 하은이와 하선이를 입양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데, 뜬금없이 남편이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쉽지도 않은 목사일을, 덜컥 하겠다고 나서는 그를 말릴 수도 없이 공부를 하고 개척까지 하게 되었다.
돈을 쉽게 벌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맨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디 쉽겠나. 개척이 쉽지 않아서 서로에게 많이도 상처를 주었다. 서로의 상처가 심해질 때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다. 사랑의교회 제자훈련반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깨달음을 얻은 김목사님은 아내에게까지 치유하게 했다. 그리고선 교회도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에 여자아이 하나를 입양했고, 나중에 남자 아이 셋을 더 입양했다. 입양하러 갈 때도 한 눈에 제 자식이 보였다고 하는 바보 엄마, 윤정희 씨는 아이를 하나씩 데려올 때마다 마음과 사랑이 한 뼘씩 더 자라갔다.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나눔을 배우고, 믿음을 배우고... 엄마가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키운 그런 모녀간이 되어갔다. 그러나 입양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밝혀야 더 성장할 수 있는 법.
하은이는 4학년 때 알게 되어 힘들지만 동생을 배려하고... 동생 하선이는 사랑하는 가슴으로 낳지 말고 배로 낳았어야 하지 않았냐고 슬피 울다가 강해졌다. 어디 그 속마음이 그리 편했을까. 그저 더 울고 떼 쓰면 엄마가 더 슬퍼하고 아파할 것이기에 스스로 강해졌다. 딱 부러지게 강한 하선이기에 아이들이 입양아라고 놀려도 굴하지 않고 그렇게 사랑으로 강해졌다. 나중에 입양한 이아들은 연장아였기에 스스로 입양된 것을 알고 와서 이런 문제는 없었지만 다섯째 요한이만큼은 상처로 똘똘 뭉쳐서 조금은 힘들었다. 어린 아이이지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단단히 두른 것을 녹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과 기도가 필요했을까. 엄마에게 대놓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그 아이를 볼 때면 어른인 내가 더 미안해진다. 얼마나 아팠으면 그런 말로 미리 자신을 보호할까 싶어서.
그래도 사랑과 기다림과 눈물과 기도가 있었기에 바보 엄마의 가족은 하나로 다시 태어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필요해서 만난 것처럼 운명인 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이런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소소하게 얼마나 많은 오해와 질투를 받았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겪었던 아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그런 생채기조차 바보 엄마는 기꺼이 감수하고 감사할 만큼 이제는 품이 넓어졌다. 항상 깊고 깊은 가슴으로 자신을 안아준다는 남편처럼 그녀도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과, 공부방에 오는 자식들과, 베트남 혼혈인 요한이 덕분에 관심이 생긴 베트남 여성들, 독거노인들을 다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큰 사람이 되어갔다.
하나님께서 바보 엄마 윤정희 씨 앞에 펼쳐놓았던 모든 인생은 그녀가 겪고 감내해야 할 과정이었다. 그녀를 더욱 크게 쓰시기 위해 그런 험난하고도 행복한 과정을 겪게 하셨을 것이다. 이제 시무하던 교회도 떠나 명확하지 않은 앞으로의 삶을 가야하겠지만 이 모든 삶도 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지금보다도 더욱 행복하게 사랑을 나눌 것이라는 것. 그것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