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던 질문이다. 새벽이라니~~ 평생에 걸쳐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만 새벽을 경험했던 나로선 그런 질문은 실례라 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한 몇 안 되는 새벽 경험은 바로 월요일이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가는 그 시기를 월요일로 봐도 되는 것인지 긴가민가하지만 월요일쯤이었을 것이다. 아드리안과 마찬가지로 나도 새벽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기에 항상 그런 시간 구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뭐, 핑계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배운 시계 보는 법도 깨우치지 못해서 한 시간이나 오차가 나는 답안을 내곤 했던 나로선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월요일 새벽까지 나는 새벽이 성큼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이 소설에 빠져있었다. 다른 모험 소설도 몇 번 읽었지만 이 소설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아주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기욤 뮈소도 그렇고 마르크 레비도 그렇고 프랑스 소설이 너무 좋아지는 요즘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채로 키이라와 아드리안의 모험과 사랑이야기를 가슴이 품고 그 새벽에 잠이 들었다. 어릴 때 봤던 극도로 무서웠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제외하곤 꿈속에 드라마나 소설의 내용이 나온다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도 없었던 일이기에 꿈속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지만, 잠에서 깨고 출근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도 내 마음 한켠에서는 키이라와 아드리안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몰입력이 뛰어나서, 다른 말로 하면 단순해서 한 가지만 생각하면 다른 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로선 조금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혼자 먹으려고 남겨뒀던 느낌이랄까. 꼭 두고두고 먹을 만한 간식거리를 잔뜩 선물받은 기분이라서 정말 하루 종일 든든했다. 그리고선 다음 날 아침에 출장을 가야했기에 이 밤중에 서평을 쓰고 있는 것이다.

 

소설을 먹고 이렇게나 든든해본 적이 없기에 조금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결말 때문에 허탈하거나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설의 결말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쩜 조금은 미결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왜 내겐 이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보일까. 너무나 완벽하고 아련하고 아름다워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만약 내가 아드리안처럼 질문을 했다면 새벽의 시작이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왜 저 사람이 아니고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아드리안과 키이라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영원하다. 그들이 죽었든 살았든 간에. 그러면 된 것 아닐까. 꼭 학자로서의 뭔가를 밝혀내고 싶은 마음이 중요할까. 그 업적이?? 어쩜 학자로서 중요한 발견을 한다는 것은 유한한 삶을 무한한 삶으로 바꾸는 과정일지는 모르겠다. 인간은 고작 일백 년을 살아가기도 버거우니까. 하지만 인생의 의미는 그런 것에 있지 않으리라. 인간과 인간이 만나 새로움을 창출하고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가 아닐런지...

 

천체물리학자와 고고학자가 만나 인간의 시초는 몇 년 전인지, 우주의 시작은 언제인지에 대한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찾아가는 모험을 겪는다. 그 안에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지만,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사건이 터지고 사람이 연결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의 비밀이나 이 세상이 생겨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데도 무척이나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내겐 이 우주가 언제 생겼고,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구 위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전혀. 화석의 정체가 의심스럽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통해 연대를 측정하는 기구도 그다지 신빙성이 없을 것만 같아서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편이다. 인간이 생겨난 지 4억 년이 지났든 몇천 년밖에 안 지났든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만남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을 만한 만남, 여러 영혼들을 구할 수 있는 만남 등 인간에게 희망이 되는 만남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땅이나 하늘만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 소설은 아마도 그 모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신부님 말씀처럼 아드리안과 키이라가 만나게 된 것이 그 목적이라 생각이 든다. 그 만남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모험을 일으켰던 것은 좀 허무맹랑한 생각일 순 있으나 어쩜 내 말이 맞을 것도 같은데... 그 모험 속에서 아드리안과 키이라가 서로를 찾아낸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제 짝을 잘 찾아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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