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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과연 정말...? 이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스위치를 누르지 말라고 즉, 자살하지 말라고 의도하는 소설치고는 너무나 암울하니까. 이런 소설을 읽고도 과연 삶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지... 2030년의 한 국가에서 자살억제프로젝트를 위해 아이들을 선별해 강압적으로 가족과 떨어뜨려놓고 언제든지 자살을 할 수 있도록 심장과 연결된 스위치를 주고 가두어놓는 실험을 행했다. 무차별적으로 선별한 아이들은 다섯 살 때 심장수술을 받아 스위치와 연결시켜놓고 열 살이 되면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형무소 같은 곳으로 보내져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야 했다. 또래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있지만,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둘씩 차례차례 스위치를 누르고 죽어갔다. 이런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로 많은 자살자들을 방지했지만 이런 성과가 제 아이를 빼앗기고 하루하루를 눈물로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과 하루아침에 부모와 떨어져 죽음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희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 의미...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들과 같이 하는 한 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 맞을까. 내가 찾아낸 것이? 내가 찾아낸 주제가 맞다면 평범한 진리를 찾아낸, 아주 주옥같은 소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아무리 훌륭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말 끝에 항상 ‘하지만’을 붙일 수 밖에 없다. 평범한 진리를 전달하기위해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갈구하며 죽어갔던 그 평범함이 왠지 너무나 과대포장 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혹은 프로젝트의 취지와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부모와의 격리로 인해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 언뜻 연결되지 않기 때문일까? 자살억제프로젝트라면서 왜 좀 나이든 아이들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열 살짜리 아이들이 자살을 그렇게 많이 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자살을 많이 하는 연령대가 아닌데 실험체로 쓰이는 것도 이상하다. 또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지도 못한 아이들에게 자살 방지에 대한 어떤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인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이 아이들이 형무소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전혀 눈 앞에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놀것이나 즐길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자살을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거부당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은데, 끌려온 아이들이 어떻게 거부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저 사랑하는 엄마를, 가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것인지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그 나이가 아니니 아무래도 이해의 폭이 좁긴 할 테지만. 평생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사랑하는 부모님을, 형제를 만날 수 없다면, 평생을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고 격리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나는 자살을 할까. 조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름 상상을 해보았다. 만일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렇게까지 암울할까. 난방도 전혀 되지 않고, 맛난 먹을거리도 없고, 재미있는 놀이나 TV시청도 금지되는 곳에서 사람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쉽게 인생을 포기할까. 나는 인간을 그렇게 약하게 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소설 속에 몰입을 하지 못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마지막 반전도 안타까웠고...
어린 아이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결국은 자살하도록 방조하는 정부를 보면서 일개 시민들의 안위는 전혀 생각지 않은 이 시대의 정부가 떠올랐다. 돈 없고, 권력 없고, 연줄 없는 일개 서민들을 마구 우롱하는 정부가 꼭 이 소설에 나오는 정부랑 조금은 비슷해보였다. 아무리 자살을 억제한다는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같은 정부 아래서 똑같이 보호받아야 하는 시민을 그렇게 실험체로 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너무나 똑같다. 왠지 이번 소설은 아름답고 숭고한 주제보다는 비정하고 얍삽한 정부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의 총괄자인 사카이 노부히데의 냉소적인 모습이 마지막으로 잔상에 남는다. 자신이 마치 신(神)이라도 된 양 냉소하는 꼴이라니~~ 또한 한편으로 이렇게 오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동물에게 행하는 인간의 비정한 모습이 떠올라서 책을 덮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가슴 언저리에 무언가 내려가지 않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아마 알고 있기에 더욱 불편한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