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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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 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을』~!

 

내게 있는 박솔뫼 작가의 유일한 정보이다. 그녀가 신인상을 탔으니 이제껏 정보가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 독특하기가 이를 데 없다. 소설의 주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배경의 소개도, 인물의 소개도 전혀 나오지 않은 채로 이야기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저 ‘민주’와 ‘을’이 등장인물 중의 주축이고 배경은 한국은 아닌 어느 외국 땅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렇게 모호한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등장인물의 성격을 재빨리 파악해내고 싶은 바람에 집중을 하는데 이 소설은 처음부분을 읽을 땐 머리가 아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논리적인 흐름이 없는 이야기를 읽을 땐 왠지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버릇이 말도 못하게 힘들어진다. 순간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재미나 논리적인 체계만 보여준다면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읽을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나를 힘들게 했다. 핑핑 돌 정도로 어지러웠으니까~! 물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민주’가 어떤 인물인지, ‘을’은 또 언제 만났는지, 또 다른 주인공 ‘씨안’은 또 어떤 인물인지 등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숨겨진 뒷이야기를 찾아가는 재미는 쏠쏠했다.

 

하지만 처음을 읽을 땐 어지러움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여느 소설과는 다른, 정말 인물도 없고 배경도 없는 한 나라의 민족성이나 문학성을 뛰어넘는 그런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만 가득 담아냈기 때문이다. 특히나 처음부분는 너무 놀랐다. ‘을’이 실은, ‘노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그 노을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왠지 그런 의미로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니까. ‘민주’는 ‘을’의 이름이 너무 쓸쓸하다고, 인간의 이름이 어떻게 ‘노을’이 될 수 있냐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충분히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쓸쓸하기는커녕 포근하고 아름답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을’은 아마도 21세기의 노마드적인 인물을 대표하기에 중심인물로 설정된 듯 싶은데 상당히 매혹적인 인물이었다. 나와는 생각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이 다른, 정말 다르기에 매혹적인 인물... ‘씨안’의 질투심 어린 객관적인 평가에 의하면 마르고 아름답다고 하니까 금상첨화다. 하여튼 여기는 한국이 아닌 어느 외국 땅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을’은 장기투숙자를 위한 호텔에 묵으면서 하루하루 살다가 한국에서 만난 ‘민주’를 여기로 불러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그러면서 다른 장기투숙자들의 이야기가 첨부되면서 이렇게 외국에서 몇 달씩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비단 ‘을’ 혼자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소설의 내용으로 봐선 ‘민주’와 ‘을’이 연인관계인지 아닌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열살 정도 더 많은 ‘을’이라지만 남녀관계는 나이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연인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을’에겐 세상 사람들의 단순한 행동이 폭력으로 다가오지만 오로지 ‘민주’에게만 모든 것을 허용하고, 또 모든 것을 요구한다는 것... 수다를 떨고 상대의 의향을 물어보는 단순한 질문조차 ‘을’에겐 폭력인데, 오직 ‘민주’에게만 ‘을’이 매달려 폭포수같이 말을 쏟아놓는 것만 놓고 본다는 ‘을’에겐 ‘민주’가 유일무이한 존재일 수 밖에~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는 건가. 이 소설에선 사랑이란 상당히 모호한 존재이라 감히 ‘민주’와 ‘을’이 사랑을 하는지 마는지 말할 수가 없다. 어딘가 중요한 뭔가를 빠뜨린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 ‘을’, ‘씨안’은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감정에 충실하기보단 그 순간의 자신의 자유와 방황에 더 치중하는 듯이 보이니까 말이다. 단단해 보이던, ‘을’이 그렇게나 의하던 ‘민주’에게도 상실감이 존재하고,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보다는 단지 기호에만 열을 올리는 ‘을’도 어딘가 상실감이 배어나오고, 언젠간 돌아가야 함을 알면서도 소박하고 허무한 삶을 즐기고 있는 ‘씨안’도, 걔 중에 가장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씨안’도 그리 멀쩡해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어딘가 멍하니 비워둔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가끔 신인상을 탄 작가의 소개를 볼 때, 먼저 눈이 가는 곳은 그의 생년월일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가, 적은가를 통해 그 작가가 살아온 환경을 유추해보는데, 일단 나보다 나이가 어린 작가라면 감탄을 금치 못할 수 밖에 없다. 글을 잘 쓰는 것만큼 부러운 것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작가는 나보다 5년이나 어리다. 물론 나보다 5년이나 어리다고 해도 벌써 성인이 되고도 남을 만큼의 나이이긴 하지만 역시 부러운 것은 부럽다. 그런데 부러워하는 대상이 좀 다르다. 내가 보통 부러워했던 것은 글을 잘 쓰는 것, 묘사력이 끝내주는 것이었다면 이 작가에겐 좀 다른 것이 부럽다. 이렇게 삭막하고 모호하고 허무한 듯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단지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을 말하지 않고 그저 현대인, 그저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을 소설로 창조했다는 것... 그것이 가장 부럽다. 소설가들에게 나이란 숫자일 뿐,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깊이있는 사고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에서 알 수 있었다. 결코 평생을 생각해도 이런 모호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나로선 그저 감탄하고 소설 속으로 묘하게 빨려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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