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슈퍼 히어로를 읽는 미국의 시선
마크 웨이드 외 지음, 하윤숙 옮김 / 잠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만화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중학생 때 처음 만화를 접하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사서 모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머니께서 만화를 사는 일만큼은 절대로 허용해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만화를 뭐 종이 나부랑이 정도로만 취급하셨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도 어머니의 눈을 피해 만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소녀적인 감성이 뭉게뭉게 피어날 수 있는 공상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도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만화란 바로 미국의 만화 같은 울퉁불퉁하고 우락부락한 영웅들이 나오는 만화다. 워낙에 생김생김이 큼직한 인종이기 때문인지 내가 좋아하는 감성적인 만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의아할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미국 만화에서는 항상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웅적인 행동만 할 뿐이 아니라 원래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이다. 배트맨, 슈퍼맨, 그린 애로우, 그 밖에 ‘저스티스 리그’가 활약하는 DC 코믹스나 스파이더맨, 엑스맨, 판타스틱 포가 활약하는 마블 코믹스 모두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거나 그런 능력을 훈련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잠깐, 그런데 정말 왜 초인이 등장하는 거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만화책이 아니다 보니까, 내가 미국 만화에는 체질적으로 싫어하다 보니까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들의 만화엔 항상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는 것을. 사실 판타스틱 포나 스파이더 맨, 하다못해 슈퍼맨까지 만화가 원작이었다는 사실을 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영화가 있기 때문에 그저 어쩌다 본 것뿐이라, 그리고 그다지 그런 영화에 열광하지 않았던 터라 미국을 이해하는 키워드에 ‘슈퍼 히어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 그렇다. 미국은 슈퍼 히어로에 열광한다. 30~4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의 전원생활 속에서 어린 시절을 성장한 슈퍼맨부터 과학기술의 부작용으로 친구끼리 초인이 된 판타스틱 포까지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조합하고 연결해붙여서 재생산하기까지 한다. 한데, 대체 왜 만들어내는 걸까?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문에서부터 나온 슈퍼 히어로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총 19명의 저자들의 글을 묶은 것인데 실제로 있는 존재가 아니니 어디 대단한 전문가를 모셔왔다기보단 어릴 적부터 만화책에 코를 들이박았던, 만화에 대한 향수가 가득한 사람들이 집필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철학교수이거나 문학교수이거나 편집장이거나 프로듀서이자 작가이거나 만화가이거나 등등...

 

내가 철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생뚱맞은 제목을 가진 책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플라톤의 『국가』, 밀 스튜어트의 공리주의나 키에르케고르가 이렇게 많이 등장한 경우는 처음이다. 읽다보면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헤맬 때도 있을 정도로 멍한 어조로 쓴 저자도 있지만, 실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과거를 캐느라고, 혹은 그의 선한 일을 하는 동기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재미있다. 한 번도 슈퍼 히어로가 선한 일을 왜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선 정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단순히 초인적인 능력이 있기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고뇌의 선택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안위와 행복을 제쳐두고 선을 행하기 때문에 슈퍼 히어로라 부를 수 있다는 것도 과연 수긍할 만 했고, 엑스맨에 숨겨져있던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도 멋졌다. 만화는 본 적 없지만 영화로 나온 엑스맨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봤기 때문에 진 그레이가 1탄에서 모든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장면이 그럴싸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설명해주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소극적이고 남자에게 의존적이던 진의 다른 자아가 각성하면서 자신의 염동력으로 온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진 모습에는 또 어떤 설명을 할지 자못 궁금할 정도다.

 

이렇게 단순하게만 봐왔던 하나의 문화 현상이 이렇게 신화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설명이 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하다. 그렇기에 문화의 힘은 강대하다고 하는 걸까. 우리도 아무것도 모른 채 만화나 영화로 이런 미국 매체를 받아들이면 이런 영향도 미리 예측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실은 여기에 나온 수많은 슈퍼 히어로 중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존재가 훨씬 더 많다. 저작권 문제가 걸리긴 하겠지만 미국사회에서나 많이 읽히는 만화 주인공에 대한 책을 이왕 내는 김에 사진이나 영화포스터라도 조그맣게 내주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했다. 수십 년을 이어져내려온 전통이기에 한 번에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렇게 그림이 조그맣게라도 있으면 이보다는 훨씬 더 쉽게 이해될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모처럼 신기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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