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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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세계문학전집이 나왔다. 총 아홉 권으로, 영국( 가든 파티 ), 미국( 필경사 바틀비 ), 독일( 어느 사랑의 실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프랑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 중국(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일본( 이상한 소리 ), 폴란드(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러시아(무도회가 끝난 뒤 ) 편이 나왔다. 그 중 내가 읽은 책은 폴란드의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인데, 꽤 재미있었다. 사실 폴란드의 민족성이나 정치·역사 상황을 잘 몰라서 폴란드문학을 읽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오히려 요즘 나왔던 독일 문학보다는 난해함도 없고 나름 흡입력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35년 동안 일본에게 지배당했던 것처럼 폴란드도 120년 동안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게 분할 통치 당했던 것도 그렇고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면서 문학이 많이 발달했던 것도 흡사해서 과거부터 강대국이었던 나라들의 작품보다는 오히려 더 잘 맞아들어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왠지 글에서 배어나오는 오만함도 없고 말이다.

 

솔직히 이 단편집을 다 읽고 나니까 폴란드 편에 붙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세계문학의 제목을 보아하니, 자극적이란 면에서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가 대표작으로 뽑힌 것이 어쩐지 이해는 간다만, 폴란드 작품의 대표성을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있지 않았을까. 하긴 폴란드 국민들이 그 끔찍하고도 잔인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목격자 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을 반성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인 카지미에쉬 비카의 말처럼 아우슈비츠 같은 야만적인 학살행위를 예술화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는 있는 법. 그러나 문학은 우리의 현실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아우슈비츠 같은 야만적인 학살행위를 예술화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타데우쉬 브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너무나 냉정한 시선을 바라보기에 문학작품을 읽기에는 너무 끔찍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외 여러 작품 중에서 이 폴란드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등대지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등대지기 노인이 위대한 폴란드의 시집을 선물 받고, 잊고 있었던 조국 폴란드의 모습과 위엄을 깨달아가는 장면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조금 허무하게 끝나는데, 아니 마지막이 조금 허무했기에 더욱 강렬한 메씨지를 남겨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잊었던 폴란드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그 노인은, 이전처럼 어디를 가더라도 그 길이 방랑과 고난의 연속으로 느껴지지 않고 적극적인 창조의 인생을 꾸려갈 것이라는 안도가 든다. 그렇기에 사람은 단지 먹고 사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인간의 영혼에 계속 위대함의 불을 밝힐 수 있는가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겠지. 그 불이 꺼지지만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생명력이 꺼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또 좋았던 것은 각 단편이 끝나면 더 읽을 거리를 알려주는데, 헨릭 시엔키에비치가 그 유명한 쿠오바디스 를 썼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쿠오바디스 란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꼭 봐야겠단 마음을 먹었었는데, 오~ 그 작가가 바로 이 작가이라니!! 귀한 보물을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다. 폴란드 작품이 이렇게나 기쁨을 줄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횡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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