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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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에세이는 참 오랜 시간을 내 곁에 두고 읽었다. 처음에는 그림 에세이니까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그저 눈으로 보기에 바빴던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이 내 곁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신변에 변화가 일어날수록 이 단순해보이기만 했던 그림 에세이가 주는 느낌이 점차 바뀌어갔다. 책은 그저 이전까지와 같은데, 바뀐 것은 내 신변밖에는 없는데, 같은 텍스트로 무료함과 지루함을 줄 수도 있고,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북받쳐오르는 감동을 받을 수가 있다니... 역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마음을 열였을 때만이 그 이야기가 효과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내 옆에 있는 동안 내 신변의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팠다. 단순하려면 아주 단순할 수 있는 그것, 일 년에 몇 번씩은 다 경험하는 그것, 그 아픈 것 때문에 나는 생각과 느낌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바꿔버렸다. 아니, 내가 바꾼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어버렸다. 그 병이. 어디가 얼마만큼 아프냐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픔의 크기를 경험하고 나니 자연히 생각이 많아져갔다. 지금도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데, 예전에는 그렇게 아픈 몸으로는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많은 일들이 가능해지는 순간순간마다 기쁨과 감격을 느끼게 되었고, 너무 아파서 남몰래 울어버릴 때에도 그 아픔을 겪을 수 있음에, 그때 그 분을 부르짖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누가 말했듯이 확실히 그 때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

이 책을 쓰신 김병종 교수님은 책도 많이 내시고 개인전도 많이 여실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신다는데, 사실 나는 이 책으로 처음 뵈었다. 그런데 처음 뵙는 분임에도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은 그 분도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시면서 깊은 신앙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어릴 적에, 또한 지금도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니셨고 다니고 있다는 남 부끄런 자기고백 때문이었다. 그 분의 신앙이야 내가 판단할 여력이 되지 못하지만, 정말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 크게 반성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그 분과 마찬가지로 내 신앙 생활들이 항상 부끄럽게 여겨지기에 자그마한, 그러나 절대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공통점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맘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에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빚어놓으신 세상의 많은 풍경들을 화폭에 담고 글로 옮겨져 있기도 하고(「1장 당신이 그리신 아름다운 세상」), 어릴 적 어머님께 받았던 많은 가르침과 신앙의 기본을 담겨져 있기도 하고(「3장 당신과 함께이기에 나 평강 누리리라」), 우리가 걸어다니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이 죄악이 편만한 이 땅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4장 당신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눈물을 많이 쏟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한 「2장 내가 그린 당신의 얼굴」편이 아닌가 한다. 나도 아플 때 그 분을 가깝게 느꼈듯이, 김병종 교수님도 죽을 고비를 오락가락했을 때 그 분을 만나셨단다. 

1989년 11월 23일 새벽, 서울 신림동의 비좁은 화실 옆에 임시로 얻어둔 한 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가 다급한 수술을 받고나서 마취가 풀리고 났을 때 경험한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셨단다. 그 때 생살을 찢기며 쾅쾅 양손과 양발에 못질을 당하던 골고다의 그이를 생각하면서 비로소 그 분의 고통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내 죄 때문에 고통을 받으셨던 그이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난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파서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더 이상 울지 않고 묵묵히 이겨내야겠다는 다짐만을 해왔던 내게 그 깨달음은 좀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 그 분도 이렇게 아파하셨겠구나! 이보다 더 아프셨겠구나! 많은 이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을 때, 바로 나처럼 고독하셨겠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죽음 속에 쓸쓸히 잠드셨겠구나! 나는 비로소 그가 나랑 함께 있음을, 내가 아파서 울부짖었을 때 옆에서 같이 울어주셨음을 알았다.

 

더 이상 나는 고독하거나 쓸쓸하지 않다. 너무 사랑해서 같이 울어주고, 죽어주시기까지 하신 그 분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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