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두대간 민속기행 1 -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 최상일 PD의 신간민속 답사기
최상일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봤을 때의 처음 떠오른 인물은 우리 아버지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의정부에서 자취를 하면서부터 서울 사람화되었던 것을 빼면 우리 아버지는 태어나기를 농촌에서 태어났고,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부터 농사일과 흙과 아주 밀접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제 환갑이 다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시에서 땅 밟아보지 않은 인생을 사십 년이 넘게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버지에게서는 아직까지 흙 냄새가 난다. 그리고 ... 흙에 가까이 있을 때가 훨씬 아버지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진다. 훨씬 적극적이시고, 훨씬 편안해하시고, 훨씬 기분이 좋아보이시는 것이... 아마 우리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봤어도 그런 말을 했을 것처럼... 그런 이야기가 이 책 속에 꾸려져 있다. 우리네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잊혀지고 만 우리네 흙 이야기, 우리네 고장 이야기가...
언제였던가, 독립영화로는 최초로 300만 관객 동원을 달성했던 한국영화 「워낭소리」가 있었더랬다. 주로 20~30대 여성층이 주고객이었던 영화가 40~50대 중년 남녀 고객들의 발걸음을 붙들 수 있었던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해주기도 했던 그 영화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불편하고 낙후되어있는 시골, 농촌의 모습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농촌에 대한 잊을 수 없는 향수가 있다는 것도 증명해주었다. 고향이 도시인 사람에게도 그 영화는 감동과 울림을 선사해주었으며, 고향에 부모님을 두고 올라와 살고 있는 실향민들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죄송함이 공존하는, 그 불편함을 직시하게 해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한 통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성공했다고 말하는 감독의 그 한 마디에도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농업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이제까지 중요했던 모든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며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던 우리 한국 사회에서 '농촌', '시골'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뒤떨어진 것, 미신 같은 것, 고루하고 낡아버린 것들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큰아버지 댁에 놀러라도 가면 불편한 재래식 화장실을 쓸 생각에 긴장했던 기억은 아마도 내게 농촌은 더러운 곳이란 인식이 강했을 것이다. 대학 때 농활을 가도, 농촌봉사를 가더라도 향긋한 거름냄새, 잉잉 대는 벌레 덕분에 농촌에 대한 인식이 쉽사리 바뀌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어린 시절, 철없던 시절에는 농촌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이제 어른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가 되어 보니, 농촌이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품어진다. 이런 지긋지긋하고도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하루를 견디다 보니 아마도 자연스레 이런 책도 눈에 드는가 보다.
라디오를 잘 듣지 않았던 나에게도 생생히 기억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것~! 우리의 알려지지 않고, 보존되지 않았던 우리의 민요를 녹음해다가 몇 소절 들려주고는 어느 지역의 누구 할아버지/할머니가 무엇을 할 때 부르는 소리라는 설명이 겻들여지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짧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나 짧고 단순한 데도 그것이 생생한 이유는 그 곡조에서 들려오는 시원스러움과 애절하게 끓는 감정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아니, 그렇게 깊은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했어도 평소 흔히 들었던 음악이 아닌 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프로듀서가 기획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산맥을 따라 거닐면서 그 안에서 살아숨쉬는 우리네 인생을 최대한 원작에 맞게 되살리려 했다. 그래서 녹취를 하셨는지 대화체를 그대로 살리셨다. 그래서 실제로 대면하는 맛이 나는 것은 더할 나위가 없지만, 가끔 못 알아들을 사투리까지 섞여 나오는 터라 조금은 헤맬 때도 있었다. 그래도 계속 읽다보니 어떤 뜻인지는 대충 알아졌다.
백두대간을 크게 나누면 총 네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그 중 두 부분이 이 책 『백두대간 민속기행 1』 편에 들어간다. 첫 부분이 지리산에서 덕유산과 삼도봉을 거쳐 추풍령까지이고, 두 번째가 추풍령에서 속리산 줄기를 거쳐 죽령까지, 다시 죽령에서 소백산까지이다. 산의 지리뿐만 아니라 모든 지리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라서 소백산과 태백산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이야기만 들을 뿐이지만, 정말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 2~3학년 쯤 되는 아이들이 읽는 전래동화 중 『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가 교과서에 수록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야기가 실제로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텃골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얼핏 보니 들어봤던 이름이 나오더니만, 정말 단양의 전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진짜였단 것은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어른이 보는 책에 나오는 것을 보니 겨우 그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진다니, 나도 참 간사하다. 아이들이 읽는 책에 나왔을 땐 한갓 하나의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렸었는데 말이다. 전쟁 중에서도 그 마을 사람들은 다자구 할머니 덕에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고 하니 그것 참 멋진 일이 아닌지... 진짜 그런 신이 믿는다거나 안 믿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산에 대한 신뢰를 쌓아간다는 점에서 참으로 멋진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런 멋진 관계, 평야가 아니여서 먹을거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산에 의존을 많이 했던 백두대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네가 살아온 고향의 이야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살풋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