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말 그대로 횡단기다, 여행기가 아니라. 누구나 여행기라고 하면 사진도 있고, 멋진 말도 드문드문 있는 그런 사진첩을 연상하기에 마련일 게다. 그런데 솔직히 나로선 그런 사진첩 같은 책은 책 취급도 안 하기 때문에 여행기를 싫어하는 편이다. 여기서 ‘편이다’라고 말한 것은 모든 여행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기는 사진도 간혹 있지만, 그보다도 저자가 일러스트를 그렸다는지, 단순히 한 번만 훌쩍 떠나갔다가 돌아온 이야기보다는 삶의 흔적, 삶의 열정, 삶의 고뇌를 드러내주었다는지 하는 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그런 요소를 갖추지는 못했다. 차를 끌고 미국의 소도시를 횡단하는 이야기가 뭐 그리 큰 흔적, 열정, 고뇌를 동반하겠는가. 사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의 책엔 뒤틀린 유머가 있다. 비록 내가 여행기에게 바라는 면모는 없지만, 평범하고 지루한 것도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유쾌하게 들리는 재주가 있는 그이기에 이 책은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이 책은 ‘발칙한’횡단기이다. 그래서 불경스럽다거나 예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유머가 좋은 걸 어찌 하누. 가끔은 이렇게 비틀린 유머를 구사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나로선 도저히 능력 밖의 일이기에 다른 사람이 열심히 비틀어놓은 것을 이렇게 열심히 찾아다니며 볼 뿐이다.

 

빌 브라이슨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 출신인데, 미국의 그런 소도시가 갖는 매력이랄지, 어이없음이랄지, 지루함이랄지에 대해 한 번 시니컬하게 들쑤시더니 어릴 적 아버지께서 데리고 갔던 미국 소도시를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글쎄, 나로서는 그저 말리고 싶었지만... 그 때는 이미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였기에 어떤 길로 어떻게 가셨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그 어릴 적에 아버지가 가셨을 것 같은 길을 찾아다니며 운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동부를 먼저 가고 그 이후에 서부를 방문하는데, 그의 시니컬한 비판을 듣다보면 도대체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횡단을 왜 하나 싶었다.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달리는 와중에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들판, 또 들판, 또또 들판, 마지막에도 들판 뿐이다. 그러니 어릴 적에는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웠을지 상상이 간다. 뒷자석에 처박혀서 수류탄을 던지며 놀았던, 아주 위험천만한 놀이도 어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렇게나 지루하다면서, 괴롭다면서 이런 여행을 굳이 하려는 미국인들이다. 다만 그들의 에세이를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미국인들에게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런 소도시 같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겐 더욱 말이다.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굳이 차가 없어도 대중교통이 어디에나 마련되어 있는 아주 협소한 반도에서 사는 내가, 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려도 왠지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 같이 보이는 도로만 나오는 그 광활한 미국 사람들의 감수성을 어찌 이해할까 싶기도 하다. 나는 그런 지루한 여행을 하기보단 집 구석에 틀어박혀서 책이나 읽는 것이 마음 편하고 행복할 테니까.

 

하지만 빌과 떠나는 횡단이여서 그런지 썩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나는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그 횡단을 했으니 빌이 소도시의 어느 지저분한 모텔에서 잠을 자더라도, 어떤 레스토랑에서 개차반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나만은 마냥 행복했을 테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이 다 빌의 선택이 아니였나 말이다. 이럴 것이면 차라리 아시아나 횡단할 것이지... 서남과 남부, 동남, 동북까지만 다 돌아도 책 네 권은 더 나올 텐데... 어쨌든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에서, 그와 더불어 미국 소도시를 찬양하는 마음으로 그는 그 지루하고도 짜증나는 미국 소도시 횡단을 마쳤다. 처음에는 어릴 적 느꼈던 온 몸을 비트는 지루함을 못 견뎌서 신선함이 가득한 유럽으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진 것일까. 아마도 그저 고향이여서가 아니라 미국인으로서 미국 소도시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원래 집 떠나봐야 집이 소중한 줄 아는 것처럼 그도 타지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애국자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의 시니컬하고도 비틀어대는 소도시에 대한 유머 가운데 일말의 따스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닐런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궁금한 점이 있다. 빌의 이 책은 이미 1989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2009년에 와서야 번역해 출간을 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빌 브라이슨이 그 당시에는 아무런 이름도 없는 무명작가였던가.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이 작년 말이였기 때문에 나로선 대답해줄 수가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20년이나 지난 책을 정보화사회란 이 시대에 나온다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선 많이 모험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요즘 독자들이 맹한 것도 아니고, 이걸 두고 뭐라고 할 텐데... 글은 재밌으나 그 외의 것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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