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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ㅣ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희생을 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찾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세시대만 해도 영주들에게 예속되었던 '자유'없는 농노들 뿐이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유"라고 하는 화두는 의식이 조금씩 개혁되어왔던 르네상스가 도래할 무렵부터 몇백 년 전부터 천천히 바뀌어온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 산물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려졌던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절대 값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의식의 개혁과 많은 선현들의 애끓는 의지와 열정 덕분에 후세에 태어난 우리는 그저 그 권리를 주워서 쓰기만 하면 될 정도로 인권은 너무나 당연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인권이 없어서 억울하게 당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드러난 곳에서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더하다. 몇백 년동안의 쌓아져 내려온 의식의 개혁없이 외세의 침략, 그리고 외세의 도움을 받아 한 해방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얻어진 권리에다가 한창 경제개발을 한다고 노동자들에게 사정없이 가해졌던 폭력 덕분에 우리는 이름도 위대한 전태일 님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분의 희생을 통해 노동자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도 숨겨진 많은 곳에서는 소리없이 신음하는 사람들은 있을지 몰라도 겉으로 드러난 곳에서는 개인의 인권을 사사로이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남자들이. 혹은 그들이. 혹은 정부가.
그런데 21세기인 요즘에도 사사로이 한 개인의 인권을 취하려고 하는 존재가 있다. 그 취함을 당하는 쪽은 세계 곳곳에서 쏟아져나오는 난민들이 될 것이고, 그것을 취하려는 쪽은 무정한,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란 존재, 그 남자들이 될 것이다. 가만 보면,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 사악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죽이지 못해, 이용하지 못해 안달났으니-. 저기 하늘 위에 신들이 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얼마나 어이없을까. 서로 "쟤, 뭐니?" 하고 놀리지 않을까. 우리가 동물원에서 사슴 무리들이 한 사슴을 죽이거나 팔아먹거나 강탈하는 꼴을 구경하는 것 같은 양상이니. 어쨌든 정부가 없는, 바로서지 못하는 나라의 국민은, 즉 난민은, 보호해줄 정부가 없기 때문에 양육강식의 원칙에 따라 강한 자들이 약한 자를 마음대로 한다. 정말 자기 마음대로. 제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한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니...
이 소설은 곧 영화화된다고 한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으로 내정되었다는데, 솔직히 이 내용을 알고 있는 내가 그 영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안타깝고도 멋진 이상야릇한 내용을 말이다. 일단 간략 소개를 하자면, 나이지리아의 난민인 리틀 비가 화자로 등장한다. 꿀벌의 이름에서 딴 이름을 안전하게 영국으로 왔는데도 버리지 않는 리틀 비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항상 금방 자살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놓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난민 소녀이다. 나이지리아말고도 자메이카 같은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들과 같이 생활했지만, 그녀들 모두 영국에 오기 전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 끔찍한 일을 겪었다. 신체적으로 강인하지 못하다고 해서, 돈이 없다고 해서, 무기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죽으리란 법은 없을진대, 한 나라가 무정부 상태가 되면 왜 아이들과 여자들이 먼저 약탈당해야 하나? 왜? 인간은 이성과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약한 자를 돕는 것을 배우지 않던가? 그들은 정신병자인가? 그들은 뭐하는 놈들인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지구 땅에 있는 남자들은 모조리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면 조금은 더 살기가 편해지지 않았을까. 전쟁도 없고, 싸움도 없고, 성범죄도 없을 테니...
나는 묻고 싶다. 아무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도 못하다고 하지만, 그 남이 아이라면, 그 남이 갈곳 하나 없는 난민이라면, 그 남이 내가 없으면 곧 죽을 목숨이라면 도와주지 않겠냐고. 그것이 내게도 어떤 대가를 치르게는 하지만, 그래도 목숨 부지하는데는 아무런 영향도 없을 정도의 대가라면, 아니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인 불구가 되는 대가라도 목숨 값으로는 싼 거 아니냐고 말이다. 이렇게 묻는 나도 그 상황에서 서슴없이 긍정의 대답을 하진 못할 수도 있을 거다. 그것은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조금은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내 일이 힘들고, 내 짜증이 도가 넘치고, 내가 아프고, 내가 급하더라도 그 정도가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런 상황이라면 역지사지해보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선한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끄집어내는데 드는 노력에 차이가 있는 것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런 노력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 노력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구해질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