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한창훈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사계절 1318문고에서 나온 『열 여섯의 섬』을 보고서이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동일한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어버린 탓에 채지민, 박상률 같은 작가들이 죄다 섞여버렸다가 나중에서야 그분들 중에서 한창훈 작가를 구별해낼 수 있었다. 그는 독특하게도 섬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말이다. 사실은 그 안타까운 서이 이야기를 한참동안 이름도 예쁜 채지민 작가가 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거의 최근에야 그것을 구별해냈던 걸로 기억한다. 섬을 휘감아 들려오는 바이올린 음율이 꼭 영화를 보는 것 마냥 떠올라서 가슴 절절하게 소설에 빠져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용은 옛날에 읽었던 터라 다 잊어버렸지만...
 
그런 그가 이제껏 살아왔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가란 존재를 한없이 괴상한 생물체라고만 여겨온 나이기에 작가에게 느꼈던 거리감이 이번 에 읽은 책으로 한 번에 단축시켜주었다. 본래 깊이가 있는 소설과는 인연을 만들지 않아온 나로서는 작가들의 수필집을 만나기는 2001년 경에 만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처음이다. 서울에 이종사촌 오빠를 만나러 갔다가 들린 서점에서 가져가기 무겁고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 패션잡지를 사준다는 걸 뿌리치고 표지가 이뻐 고른 책이었다. 그 당시까지 '공지영'이란 작가를 알지도 못한 때라 그저 심상한 마음으로 수도원을 구경했더랬다. '공지영'이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아우라를 벗어버리고 구경한 그 수도원 이야기에서 느낀 건, 이렇게 눈을 떼지 못하고 책에 빠져든 것을 처음었다는 것이었다. 막연히 참으로 글을 잘 쓴다..그런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이번의 『한창훈의 향연』이란 수필에선 조금 달랐다. 막연히 펜 가는대로 쓴 것과 적절하게 편집이 필요한 기행문이라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공지영'과 '한창훈'이 품고 있는 내음이 달랐던 것뿐.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공지영'에게선 수도원이란 특수한 장소를 가서 그랬을까, 몇 백년은 묵혔을 것 같은 고고한 공기 내음이 났다.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공기 내음이. 그런데 '한창훈'에게선 바다내음 말고는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 순수한 바다 사나이이자 바다에서 살아온 그의 인생살이에서는 '바다내음'를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사람에게는 고유한 체취가 난다는 걸 일을 하면서 알았다. 일을 하면서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에게서 나는 체취가 내겐 역하게 느껴지면 그것만큼 고역이 없다는 것도. 더불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느껴지는 내 체취에 신경쓰이기도 했다. 특히 관심이 가는 사람을 만나다면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이 먹고 있는 것, 바르고 있는 것, 살고 있고 있는 곳을 민감하게 드러내는 체취이기에 만약 체취가 안 맞다면 그 사람과는 절대 사귈 수는 없는 일일 거다. 그런 의미로 내겐 '공지영'의 내음이 맞았다. 2001년도까지만 해도 각성하지 못했던 내 책사랑유전자가 아마도 몇 백년을 이어져내려왔을 것 같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혹은 수도원과는 맞아들어갔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한창훈'의 내음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고 살아서 여름에 휴가를 가도 산으로만 가고싶은, 그렇게 바다와는 별로 친하지 않는 나이기에 어쩐지 바다가 신선해보였으니까. 태어나서 바라본 먼 곳이라곤 아득한 수평선 뿐이고, 둘러보는 곳마다 물이 있는, 비릿한 냄새가 떠돌아다니는 그런 섬 생활이란 내겐 동경 그 자체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동경의 대상이어서 그럴까. 육지인들이 섬을 동경해서 섬에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육지가 그리워 섬을 뛰쳐나가는 것이? 이상과 현실은 분명 동떨어져 있는 부분이 많겠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 동경이니까. 맞다. 그래서 난 내게 없는 '한창훈'의 바다내음을 동경한다. 물의 비린내도 싫어하고, 생선의 비린내는 더 못 참는 나로서는 바다에 사는 것은 꿈도 못꿀이지만, 초등학생 무렵에 친척들이랑 같이 간 마산에서 막 캐 바닷물에 굴껍질을 씻어내 먹었던 굴맛도 잊지 못하기에. 그의 책을 보며 느꼈다. 바다의 삶은 이렇구나, 자연의 축복과 위협을 동시에 맞아들이는 일이구나, 바다사나이의 삶이란 이렇구나, 낚시대 하나만 드리우면 먹을 것은 걱정없는 그런 삶이구나,,,
 
이 책엔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소설 『열 여섯의 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소설 속에서 아름답다 감탄하던 '서이'란 이름이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인지 그 가슴 저린 사연을 말이다. 친구 편에서 알게 된 한 사내의 딸애 이름이 '서이'였는데 그 이름의 사연이 씁쓸하다.
 
"뭔 특별한 이유가 있었간디요. 솔직히 셋째까지 딸을 낳아서 영 섭섭합디다.
그래서 한문 맞춰 이름 짓기도 귀찮아서 그냥 서이라고 했소. 하나, 둘 서이, 너이,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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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투리로 숫자를 셀 때 하던 말. 단순한 숫자 셋. 이름 하나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존재. 그러자 내 여자 동창들이 떠올랐다. (P. 32)
 
그러고 보면 한창훈은 페미니스트이다. 남자로 태어나서 몰랐을 수도 있는 불평등한 여자의 세계를 그는 낱낱이 안다. 아니, 느낀다. 그런 작은 것에 아파하고, 귀를 열어주고, 안아주는 바다 사나이이기에 아마도 그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세상에 화려하고 힘이 세고 아름다운 것에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많은 시선들이 와 달라 붙는다. 하지만 작고 단조롭고 힘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글쟁이들은 작고 약한 것에 공감하는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소설 『열 여섯의 섬』이 아름답고 감성적이었기에, 섬에 와 외로움에 지친 여성의 심리를, 그것을 바라보는 열여섯 살 난 여자 아이의 심리를 예사롭지 않게 그렸기에 나는 작가도 감성적이고 여린 사람인 줄 알았었다. 물론 한창훈 작가는 작고 연약한 것에 무한히 공감대를 이룰 정도로 감성적이고 여리기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그런 여리여리한 인물은 아니였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바다에서 하는 막노동도 거뜬히 해내고마는 진정 사나이었다는 것은 소설 속에서는 절대 엿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 나는 그의 수필집 『한창훈의 향연』을 만날 것을 대견스레 생각한다. 잘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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