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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희망을 쓰다 -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박승일.이규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세상이 이렇게나 발전했음에도 아직까지 정복되지 않는 불치병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루게릭병이다. 이 병의 공식 명칭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나 1930년대 메이저리거인 루이스 게릭 선수가 이 병으로 38세에 요절하면서 '루게릭병'이란 별칭으로도 불려진다. 그런데 내겐 루게릭 병이라고 하면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떠올라서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는 병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는가! 물론 그가 몸을 많이 사용하는 직종에 있는 것은 아니여서 제 전공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탓이기도 하고, 또 그의 호흡기는 여타의 루게릭 병과 달라 제 스스로 숨도 쉴 수 있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던 탓에 그렇게 단순하게 제 3자의 입장에서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어떤가!! 화요일마다 제자인 미치 엘봄이 갈 때마다 주옥같은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었지 않았나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암담하다못해 바라보기에 참혹할 수준이다. 가장 힘겨운 것은 아무래도 간병인과 환자간의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것이다. 정신은 오롯이 살아있는데 꺼져가는 육체 안에서 무기력하게 세상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겨울까! 그리고 혼자서는 숨도 쉬지 못하고 혹여 잘못해서 기도가 막히면 몇 분 사이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환자를 간병해야 하는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겨울까! 혹 지옥이 이런 모양일까...?
루게릭병에 걸리면 혼자서 몸을 움직일 수 없기에 간병인은 자다가도 2시간에 한 번씩 몸을 돌려줘야 하고, 혹 기도가 막히지는 않았는지, 사레가 걸리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가래를 빼는 것도 수십 번을 반복해야 하는 병이기에 간병인은 24시간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간병인 하나 쓰는데 100만원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15만원만 지원해준다고 한다. 그것도 간병인 측에서 루게릭 환자는 거절하니 그 돈을 직접 환자 가족에게 준다면 훨씬 유용하지 않을까... 그리고 혼자서는 숨 쉴 수 없기에 부착하는 인공호흡기를 대여하는 것만도 80만원이나 드는데 이것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나마 이것은 한국ALS협회 부회장이던 김진자 씨에 의해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돈이 들어갈 구멍은 많은데 나올 구멍이 없는 이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까... 이 병은 발병하면 언제고 죽을 병이라는데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이 하나도 없다면 환자 이외의 가족들도 희망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 박승일 씨는 루게릭병을 가리켜 "물귀신"이라고 불렀다. 가족들까지 피말려 죽음까지 불러들이는 물귀신이라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 보면 모리 박사가 촛불에 빗대어 루게릭병을 설명하는데, 그 책을 읽은 박승일 씨가 단호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다른 사람을 비추는데 루게릭은 다른 가족들을 다 전멸하게 한다고... 사실 미국에선 루게릭병에 걸리면 하루에 세 번씩이나 전문간병인이 돌봐주기에 가족경제가 무너지는 일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간병인 비용부터 온갖 기구와 기계를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도 다 제 손으로 지불해야 하니, 누구 하나 돌봐주는 가족이 없는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2002년 '국내 최연소 농구 코치'로 발탁되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박승일 씨가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투병했던 과정, 루게릭병의 홍보활동을 한 이야기를 이규연 기자의 손으로 나온 책이다. 책의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박승일 씨가 죽기 전에 루게릭 전문 민간요양소 건립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이 책을 빨리 출간해달라고 재촉하는 장면이 있다. 그 때까지 책의 1/5 분량밖에 확보하지 못했던 것을 어쩜 이렇게 잘 꾸려냈는지 읽으면서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아마 박승일 씨도 이 책을 보면 흡족하지 않을까? 그런데 책에 나온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맞지 않는 박승일 씨의 메일을 보고 궁금했던 건 어떻게 루게릭을 앓고 있는 환자가 메일을 쓸까 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엔 안구마우스를 통해 눈으로 깜박이는 걸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안타깝게도 어떤 일로 충격을 받고 눈조차 움직일 수 없어 안구마우스조차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면 꽤 많은 돈이 될텐데, 네이버에서 콩으로 후원하는 「해피빈 」캠페인에서도 박승일 씨의 민간요양소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다. 이 책에서도 나왔지만 진짜 백혈병이나 심장병이나 수재민 같이 자주 생기는 질병이나 재난에 대해서는 기금 모금하는 자리가 자주 생기는데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난치병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나온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배우 김명민 씨가 20kg 이상 살을 빼고 루게릭 환자로 열연한 덕에 조금은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일단 이 책이 원작이라니까 꼭 보길 바란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감사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