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만들기 1 - 인연 찾기
현고운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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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연 만들기란 원래 정해져 있던 인연을 찾는 것이다?

 

한국의 로맨스소설의 대표주자 현고운 씨가 조금씩 시나리오에도 손을 대고 있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다른 로맨스소설과는 다르게 특이한 사고를 가진 여주인공의 톡톡 튀는 대사는 내가 들어도 한 눈에 반할 정도이니, 현고운 씨가 시나리오에 욕심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본다. 소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남녀주인공의 대면 장면에서 어쩜 그런 대사를 치고 들어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 설정과 대사 아이디어는 정말 대단하다. 현고운 씨의 소설을 즐겨 보는 이유도 그런 참신하고 톡톡 튀는 대사가 마음에 들어서이니까, 더 말을 해야 무엇하랴. 특히 우울할 땐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런 현고운 씨의 작품 중 『1%의 어떤 것』 이후로 또 한 권의 소설이 드라마화되었다. 이번에 본 『인연 만들기 1 : 인연 찾기』가 바로 그것이다. 계속 내실 책도 많은데, 시나리오 작업을 하시느라고 신간을 안 내시면 안될 터인데, 저번에 나온 『나와 함께 채송화』의 후속작도 나와야 하는데.. 등등의 온갖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현고운 씨의 작품이 드라마화 된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소설과 드라마의 전달 매체가 다른 만큼 소설과는 다른 러브스토리가 그려질 테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유진 씨가 여주인공으로 나온다는데 저번에 나왔던 『1%의 어떤 것』의 김다현 역을 맡았던 김정화 씨만큼만 잘하면 드라마는 재미있을 줄 믿는다.

 

현고운 씨의 작품에는 우연한 상황에서의 남녀 주인공의 만남이 많이 등장한다. 우연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인연이고,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아직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지 않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만, 그런 상황까지 엮이게 놔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조금의 호감은 있었다고 생각할 밖에. 여주인공 빅토리아, 아니 한상은은 9살 적에 캐나다로 이민와서 대학 전까지는 캐나다에서, 공부를 위해 미국에서 몇 년을 살았으나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 덕에 언어는 물론이고 순수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특별한 처자이다. 그런 그녀가 변호사 공부를 하면서 사귄 알렉스에게 프로포즈를 받고는 아버지께 허락을 받으러 가지만, 순수 토종 한국인만 사위로 들인다는 철칙을 가진 아버지와의 협박으로 1년만 한국에 있다가 오기로 했다. 물론 한국에는 정혼자인 김여준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말이다. 정혼남 김여준, 그 사람은 대한그룹이라는 아버지 회사를 대신 이끄는 어마어마한 재력가이지만, 아직은 결혼은 요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하기 어려울 여자들만 사귀는 바람기를 가진 남아인데, 역시 아버지의 명령으로 정혼녀인 상은이를 만나야 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현고운 씨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재벌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의 어떤 것』의 재인도 재벌이었고, 『잘 쓰고 잘 노는 남자 한량』의 하경은 건축가이지만 그의 집안은 대재벌로, 『하늘에 이르는 남자 건달』의 상경이 그 기업을 맡았다. 『봄날의 팔광』에선 민혁이 조금씩 성장하는 젊은 사업가였고, 『사자’s 러브』에선 재벌은 아니지만 사채업자인 주찬이 등장하고, 『지금은 전쟁 중』에선 재벌그룹의 사고뭉치 아들인 현명이 등장한다. 최신작인 『나와 함께 채송화』에서는 한의사로 꽤 큰 한의원의 원장이니까 돈은 무척 많은 남자다. 가만 보니, 돈이 많으나 삶의 목적이 딱 돈 뿐이거나 집안에 문제가 있거나 사랑을 잃어버려 상처를 받았거나 하는 남주인공들이 삶의 즐거움만 가득한, 자신의 삶에 진지한 여주인공을 만나 기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전부다. 구성이 참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대사가 톡톡 튀는 게 아닐까.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여준과 상은은 첫만남부터 안 좋았다. 여준이 심기가 불편한 상태로 전화통화하는 걸 들어버린 상은이 좋을리가 있을리가. 여준도 별로 특별해보이지도, 이쁘지도 않은 여자가 한 마디도 안 지는 것이 꽤 불편했을 거다. 그러다 서로의 부모님들이 거짓말한 대로 상은은 날라리인 척, 여준은 바람둥이인 척 꾸미는 동안 서로에게 정들어가는데, 상은이의 알렉스가 한국으로 내려오고 여준을 노리는 혜림까지 가세하니 이거 첩첩산중이로다. 내용은 알콩달콩 재미있는데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현고운 씨의 작품 속 여주인공의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떤 상황에서나 어딜 가더라도 대범하다는 것이다. 흠, 『잘 쓰고 잘 노는 남자 한량』의 민주는 좀 아닌가. 하여간 그 외 다른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범하고 흔들리지 않는데 뭘 믿고 저러는 건지 진짜 모르겠다. 이 소설의 주인공 상은도 혜림의 방해공작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 조금 감정이입이 안되었다고나 할까. 사랑한다면 자신없어지고 초조해지고 이상한 상상도 하게 되고 그런데, 왜 상은은 그렇게 뻣뻣하지? 조금은 자신없어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초조해져야 극적인 감정이 더 생기지 않겠어? 하여간 이 부분만 빼곤 다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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