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의 즐거운 인생
줄리아 차일드.알렉스 프루돔 지음, 허지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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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줄리아 차일드는 '미국 요리의 대모'로, 1961년에 출간되어 장기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킨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을 쓴 저자이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점은 그녀가 미국에 살 때는 요리의 '요'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남편의 직장 때문에 간 프랑스에서 자신의 천직이 요리라는 것을 깨닫고 프랑스 레스토랑 다니기를 즐기고 온갖 부엌 용품을 사들이며 결국에 가서는 프랑스 요리를 즐기는 다른 두 사람과 같이 요리책을 내기에 이른다. 때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시공무원 소속으로 아시아에서 만난 줄리아와 폴은 미국으로 와서 백년가약을 맺기로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문화와 사람들을 즐기는 아름다운 부부였다. 그러나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하고, 맛있는 프랑스 요리와 와인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폴과는 달리 줄리아는 전형적인 미국 사람으로 투박한 미국요리를 먹어봤을 뿐, 요리를 해본 적도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집에서는 요리사가 있었고, 신혼 살림을 차린 프랑스에서도 대부분의 집에선 가정부가 요리를 하기 때문에 요리와의 접근성이 떨어진 탓이었다. 그랬던 줄리아가 프랑스에 와서 요리에 빠진 것은 투박한 요리가 전부라고 믿었던 줄리아의 상식을 깬 아름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나중에 미식가인 폴이 자신의 속내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내가 처음 시도했던 음식들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었죠. 줄리아와 결혼하려고 했다니...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용감했어요. 그래도 내 판단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정말, 그랬다. 처음 프랑스에서 아름다운 레스토랑에 데려가준 것도 폴이었고, 와인에 대해 알려준 것도 폴이었고,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 수업을 받고자 했을 때도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것도 폴이었다. 이런 아낌없는 외조가 있었기에 줄리아가 '미국 요리의 대모'가 되지 않았을까. 역시 대단한 업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한 법이다.

 

프랑스에 와서 기본적인 음식 만드는 방법을 혼자서 터득한 후에 보다 전문적인 요리의 체계를 배우고자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을 했던 줄리아는 자신이 속한 반이 자신의 수준에 너무 낮은 것을 알고 교장을 만나 더 높은 반, 그러니까 레스토랑 준비반에서 건장한 퇴역군인들과 같이 공부하게 되었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셰프 버그나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던 그녀는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넘쳐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 때 바로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정리하는 터라 금세 성장하는 그녀에게 셰프 버그나르는 그녀의 집에까지 와서 요리의 비법을 가르쳐주기도 했고, 자신이 단골로 가는 시장에 데려가 고기업자, 채소업자, 생선업자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단다. 역시 이쁨을 받는 것은 제 할 탓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선생님으로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 어찌 아니 이쁠 수 있을가. 난 좋은 선생님과 좋은 제자가 잘 만난 역사적인 사건이라 생각된다. 졸업을 한 다음에 여러 프랑스인들과의 모임에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시몬느 벡, 루이제트 베르톨이었다. 프랑스 미식가 단체에 가입해서 알게 된 두 여인들은 전통적인 프랑스 요리책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타자로 쳐주는 일을 맞다가 요리에 대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감당할 것 같지 않은 출판사를 가는 과정에서 줄리아는 단순히 타자를 쳐주는 일에서 공동저자에까지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952년 9월에 참여하기 시작한 요리책 집필이 1959년 9월에 마무리했으니 대단한 열정이 아닌가! 그런데 처음에 생각했던 방식대로 책을 내지 못하고 너무 방대하게 된 책의 분량을 반으로 줄이고 낸 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 1970년에 나왔으니 대단한 일이다! 요즘은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요리 만드는 일러스트까지 삽입했으니 얼마나 꼼꼼히 만들었는지 상상을 못할 것이다. 프랑스 요리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요리방법을 담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프랑스에서 나는 생선이 미국에서는 없는 경우의 수까지 꼼꼼하게 신경쓰고 생선의 이름을 부르는 방법을 제각각인 경우까지 말끔하게 잡아내었으니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정말 그 때 나온 그녀의 요리책을 하나 가지고 싶을 만큼 줄리아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유명한 요리사가 쓴 요리책이 있긴 했지만 그런 요리책에도 오류가 더러 눈에 띄었고 왜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예를 들어 미국초콜릿으로는 초콜릿케이크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 등을 실험해본 다음에 요리책에 실었으니 얼마나 자세할지...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줄리아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그녀들의 요리책은 상당히 반향을 일으켰고, 취재기사로 인해 그 반향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해졌다. 그러고 나서 줄리아가 한 일은 TV에 출연하는 일이었다. 요리전문가들이 요리법을 시연해주는 프로그램을 다들 한 번씩은 보셨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줄리아의 박력 넘치는 그런 프로그램이 원조가 될 정도로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열악했던 프랑스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평화롭고 풍족하고 발전되고 있었던(TV가 그 때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그런 실용적인 요리책이, 그리고 그런 요리방송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었음은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줄리아가 방송을 찍자고 제의를 받았을 때조차도 줄리아와 폴의 집에는 TV가 없었을 때였기에 그 당시 프랑스와 미국의 차이가 쉽사리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잘 이겨낸 줄리가가 대단히 멋지다.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특혜를 받았단 많은 미국인들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줄리아의 인생에 요리를 만나게 된 것은 그녀에게는 정말 짜릿하고 멋진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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