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뜨거운 순간
전은숙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떻게 보면 금기라고 보여질 이 사랑을 어쩜 그렇게 가슴절절하고 애달프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정말 마디게 읽으면서 깊은 사랑을 맛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여기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소개해보면, 

은열희 23세, 현직 서울교육청 고위공무원으로 있는 큰아버지 덕택에 이강고로 갓 들어온 신입 국어교사, 임시 3학년 담임

한무이 19세, 이강고 3-2, 4대 독자, 서울대 법대가 확실시되는 전국구 톱, 아버지 전직 검사에 현직 국회의원이지만 대통령자리까지 노리고 있는 권력가, 2년 전 한남동 본가에서 나와서 아현동의 오피스텔에 독립, 친한 교우 이도률과 주이언...

 

뭐, 남자 쪽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집안으로 설정해놓은 것이나 패싸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진들이 다수 등장하는 줄거리가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제 여자를 지키는 남자란 모습이나 금기를 뛰어넘으려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표현한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다음은 무이가 열희를 보면서 하는 독백이다....(표현이 너무 섬세해서 내 말을 쓰는 것보다 책을 베끼는 게 더 나을 정도다)

 

기억날 듯 말 듯한 뜨거운 그 무엇, 다리가 푹 꺾일 것 같은 심장의 떨림, 최초로 느끼는 거대한 감정의 폭풍.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몸과 마음에 몰아친 폭풍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 충격적이기만 했다. 갑작스럽게 가슴 속에 불어닥친 폭풍은 그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를 보기 전엔 떠올린 적 없는 '운명'이란 말이 느닷없이 이것이구나 하는 확신으로 덮쳐오기까지 했다.(...) 그녀도 그를 의식한다는 걸 무이는 알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 알 수 있었다. 무이가 그녀의 시선을 잡고 놔주지 않으면 그녀는 뺨을 발갛게 붉히고 있었다. 도망치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기도 했다.

복도에서 어깨가 닿을 듯 아슬아슬 스쳐갈 때 그녀가 긴장해 숨을 멈춘다는 것도 알았다. 뒤돌아보면, 어깨까지 오는 머릴 단정히 묶어 올려 하얗게 드러낸 목덜미를 바르르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확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안아버리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무이는 금기를 깨길 원해고 신분의 경계와 도덕의 법칙을 넘어서길 원했다.

그녀에게 뻗어지는 손을 간신히 접으며 죽을 것처럼 고민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그의 세상을 밝혔다가 어둡게 했으며 다시 밝혔다.

희고 뽀얀 피부와 세상의 더러움은 모르는 듯한 천진한 눈동자는 가슴을 뛰게 했다. 달콤한 맛이 날 것 같은 도톰한 작은 입술이 붉었고ㅡ 자신의 미모를 의식한 교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은, 풋풋하지만 아직은 어려서 곱고 순수한 모습...

 

이번엔 열희가 보는 무이의 모습....

 

남자치고는 하얀 얼굴과 맹금류를 연상시키는 길게 찢어진 커다란 눈매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동공이 큰 강렬한 검은 눈동자도...무이는 굉장히 잘생긴 아이였다. 아니, 잘생겼다고 하기는 모자랄 정도로 존재감이 강했다. 무이는 180이 넘는 큰 키에 외모 또한 어른스러워 얼핏 보기엔 교복차림도 직장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학교로 첫 출근한 날에 만원버스에서 내려 옷차림을 살피다가 고갤 들었을 때 감색교복 상의 밖으로 비어져 나온 폭 좁은 타이가 보였다.

저도 모르게 타이 매듭 위쪽으로 눈길을 주며 깨끗하고 곧은 목선이 우아하다고 생각했고 흡사 지배자다운 강건한 팔다리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잘생긴 얼굴과 마주한 순간 그의 서글한 두 눈이 클로즈업되면서 그녀 가슴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꺾어 올려다봐야 하는 훤칠한 키의 그는 바로 앞에 서 있었고 알 수 없는 까마득한 그리움이 거기에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묘한 그리움을 느끼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 (...) 첫 만남 때 무이는 분명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이의 첫 느낌은 소년이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단단한 내면과 육체적 힘과 용기를 가진 남자로 다가왔다.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생소한 첫 경험으로, 그러나 결코 낯설지 않게 부딪쳐와 마음을 흔들던 애잔한 그리움. 떨리는 주저와 아득한 후회... 가슴 설레는 이상한 불안들.

 

무이의 생모가 돌아가셨을 때, 이미 남자이지만, 자신을 갈 곳 없게 떠돌게 만들었을 때...

그렇게나 강인했던 무이가 제 마음 둘 곳 없어 그리운 열희에게로 다가간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러 가듯이...

그리고 일을 저지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극악무도한 상처를... 그리고 제 여자라고 여기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무이와 열희의 관계가 밝혀지면 혼자서 욕을 먹을 열희를 위해서 ㅡ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그리움과 사랑을 모두 이겨내며,
둘은 이어진다. 영원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