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니
펄 벅 지음, 이지오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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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 잣대는 참으로 고무줄인데, 우선 책표지다. 좋은 내용을 가진 소설을 책표지 때문에 못 보는 것은 아니냐고 놀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모로 박사의 섬』은 왜 봤으며, 『』은 왜 봤겠는가 말이다. 내용도 당연히 좋아야 하겠지만, 소장하기 위해선 당연히 아름다워야 한다. 요즘 모 자동차 광고에도 나오지 않는가. 무조건 이뻐야 한다고~ ㅋㅋ
 

이 소설은 『대지』로 유명한 펄벅 여사님의 숨겨진 작품이다. 펄벅 여사님의 미발표작을 길산출판사에서 발표해낸다나 뭐라나~ 유명한 『대지』조차 대충 아는 나로선 이런 고전 정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번 소설 『피오니』는 참 재미있었다. 물 흐르듯이 읽혀지는 섬세한 필력에, 등장인물 간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선까지 싸그리 잡아내는 탓에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벌렁벌렁 했으니... 그런데원래 난 해피엔딩이 아니면 잘 못 읽는다. 그래서 고전을 많이 안 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격한 감정 씬이 나온다거나 주인공에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압박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책장을 살포시 덮는 버릇이 있다.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는 나로서는 한 번 덮어도 다시 펼쳐들기는 하지만, 그것이 심한 압박이라면 그 자리에서 영영 안녕이 될 수도 있다. 평소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기에 바쁜 인간인지라 책 읽는 버릇도 똑같은가보다. 역시 제 버릇 개 못 주는 건가.

 

소설 속 배경은 펄벅 여사님이 사랑하는 중국이지만 등장인물 중에 유대인이 나온다. 중국까지 유대인들이 흘러들어 갔었는지 몰랐던 나로서는 꽤 흥미로웠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보통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인간미 없고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로 나오는데 그것이 못내 마음을 괴롭히는지라 이 소설도 숨 죽이면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 소설에서는 유대인들에 대해 조금은 동정적으로 나와서 마음을 쓸어내렸지만, 소설 속 아버지 세대인 에즈라가, 아들 세대인 데이빗와 리아가, 처한 현실이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였다. 세상을 지으신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목숨같이 여기도록 교육받아 온 전통과, 중국의 우호적이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유쾌한 문화 사이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혼혈 유대인들을 보노라니 안타까울 수 밖에~ 더불어 나도 같이 혼란스러웠다.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녕 나쁜 것인지, 아니면 유대 계율을 지키면서 아무 이유없이 박해받는 자기 민족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우울하게 생활하는 것이 나쁜 것인지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펄벅 여사님은 그 결론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정신적 지주인 랍비의 눈을 멀어버리게 하면서....  

 

어쨌든 유대 전통을 잇기 위해 랍비의 딸과 결혼을 종용당하나 아직은 그런 큰 임무를 담당하기엔 벅찬 데이빗과 그런 그를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몸종 피오니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인간의 삶은 절대 그 개인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조그맣고도 조그만 한국에서 역사에 한 획을 긋지 않으면서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한 부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한 사소한 행동과 아주 작은 생각으로 말이다. 거대한 역사의 발자취 아래서 아무 의미없다고 한숨 쉬며 살아갈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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