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인권운동 이야기 2
매리 C.터크 지음, 김태항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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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라는 것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가 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인종 차별은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고, 나와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들에게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일 게다. 특히 한민족이란 착각을 안고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상당히 싸늘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겉모습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대놓고 불이익을 준다. 단지 불법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인간으로서 하면 안되는 짓, 같은 인간인 것이 부끄러울 정도의 짓을 저지른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중국인들이 많이 모이는데, 진짜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아침 일찍 준비해서 우리 교회에 온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람들은 미워죽겠는데, 이 교회에서는 많은 동포들도 만날 수도 있고,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직 중국인들이 소규모로 모였을 때, 같이 놀고 그랬는데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다른 나라에 살면서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얼마나 든든하고 안심이 될까. 잠깐이라도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드는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그럴 수는 없다. 이것은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이다. 인간이 인간을 돕지 않는다면 누가 도울 수 있단 말인가.

 

평소 그렇게 피해를 당하는 불법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 터에 미국의 인권 운동이 걸어온 길을 알려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면서 알게 된 책인데, 이 책에는 내가 평소 존경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님도 실려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인종 차별을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세계화의 시대에 외국에 안 나가고는 살아가지 못할 때에 불시에 유색인에 대한 미묘한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안 그러는 세계인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세계인으로서 인권 운동의 역사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이렇게 다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보다보니 미국에서 벌어진 조용하고도 강한 비폭력 저항운동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이 떼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인권 운동은 바로 흑인 인권 운동일 것이다. 위대한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외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남부에서는 인종 분리법이 있었고 북부에서는 성문화된 법은 없었지만 관습적으로 분리 정책이 유지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것이 1950년대까지의 일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도 없어 좋은 전문직의 직업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랬기에 흑인들에게는 가난이 대물림 될 수밖에 없었고, 백인들에겐 인종 간의 지능차이가 난다는 - 즉, 흑인이 백인보다 아이큐가 15~20정도 낮다는 - 어이없는 연구 결과까지 안겨주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흑인 인권 운동이었다. 처음에는 백인들이 배우는 학교에 매일같이 출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학생들이 시작했다. 학교 내에서 아이들을 모아서 백인 학교와 다르게 학교 비품이나 교재를 제대로 구비해주지 않는 것을 두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NAACP(전미 유색인종 지위 향상 협회) 소속의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버스에서 흑백 분리 버스 정책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체포되는 사건을 계기로 소송으로 그 법의 합법성을 묻고, 더 나아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실시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는 손님들의 대다수가 흑인인데도 흑인 지정석에만 앉아야 하고 중립석에서도 백인이 타면 비켜줘야 하는 굴욕적인 사태를 버스 운전사는 보고만 있다거나 오히려 일어나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폭력 정신으로 381일 동안 걸어다닌다거나 차가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타는 등으로 버스를 타지 않는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버스 분리 정책이 폐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흑인을 증오하는 백인들이 임산부나 소녀들에게 구타하는 등의 보복이 뒤따랐다. 이런 끔찍한 경험을 극복하고서 인권을 획득한 흑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가장 뜨거웠던 인권 운동은 1960년대에 일어났다. 분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식당에서 연좌농성을 한다든지, 어디든지 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자유 여행단을 조직한다든지, 시청까지 거리 행진을 한다든지 여러 방식대로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저항 운동이 비폭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식당 연좌농성을 할 때 침을 뱉거나 케첩을 머리에 뿌리거나 하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앉아있기란 어렵지 않았을까. 시가 행진을 했을 때 소방호스를 가지고 와서 물을 뿌리고, 잡히면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의연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자유 여행을 했을 때는 버스에 불을 지르고 구타하는 등의 생명 위협이 진행되고, 그런 가해자들이 전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내겐 그 모든 일이 인간으로서 하기 어려운 위대한 일들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라는 끔찍한 시련을 겪었지만 그것은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린 상태였는데, 흑인들은 평생을 갈취만 당하고 살아왔던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흑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14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들이 흑인 교회 테러로 희생당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꿈은 너무 위대했기에 절대 멈출 수가 없었다. 많은 지도자가 죽었고, 많은 목사가 순교당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과 기독교인과 이슬람인들은 선을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었고, 드디어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인권 운동을 하는 중에도 여성 지도자들은 상대적으로 남성 지도자들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등의 차별을 받았기도 하지만 흑인 인권 운동은 인간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숭고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위대한 행동이다. 하지만 21세기인 아직까지도 가야할 길이 멀다. 아직도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 소득이 낮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득이 낮으니까. 아직까지도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불리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앞서 지나가신 순교자들의 성공을 발판삼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크고 작은 분쟁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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