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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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화의 패턴』을 읽게 된 것은 일본 문화를 설명한 『국화와 칼』 때문이었다. 내게 그녀가 대단해 보인 것은 옆 동네에 있으면서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던 일본인들의 민족성이 그녀의 책으로 아주 쉽게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일본에 가보지도 않고서도 그렇게 일본 문화를 아주 훌륭하게 집대성해 놓은 것을 보면 그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사실은 그 책이 무척이나 어려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는데도 어떤 부분은, 무사들의 정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내용만 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개념들이 확실한 제 모습을 드러내주는 같은 환상을 느꼈다. 같은 동양문화권이라서 그래도 서구인들보다는 일본에 대해 꽤 아는 게 많다고 자부하면서 읽었었는데 완전히 그녀에게 KO패 당해버렸다. 물론 학자인 그녀에게 내가 댈 바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소유욕이 드니, 원~

 

이전까지는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은 부정확한 방법 때문에 과학적인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환상까지 끼어든 학문이었다는데 그녀의 스승인 프란츠 보아스가 현지탐사를 강조했고 그렇게 얻어진 자료들을 철저히 비판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과학적인 학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때는 모든 인류학자들이 모든 인종 집단이 독자적으로 문화적 형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았던 때였는데 보아스의 객관적 자료와 연구 때문에 그것이 사실은 인종 차별주의였음도 밝혀지게 되었다. 오만한 서양인들 같으니라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루스 베네딕트도 여러 해에 걸쳐 주니 족의 현지 답사를 나가 얻은 자료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목적은 다수의 부족을 서로 비교 연구하여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고 그 문화 안에서 개인의 선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연구하고 또 책으로도 낸 주니 족의 자료와, 자신의 스승인 보아스의 북서 해안의 자료와, 레오 포춘 박사가 연구한 도부 족의 자료를 가지고 비교 연구했단다. 그 당시만 해도 인류학자들이 직접 답사를 통해 얻은 자료가 아니라 선교사들의 노트나 여러 민족지학자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연관성 없는 세 부족의 문화를 비교하려는 것만 봐도 베네딕트가 얼마나 객관적인 과학자인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살펴본 주니 족과 도부 족, 그리고 아메리카의 북서 해안의 문화는 한 올만큼의 공통점이 없이 전혀 상반된 모습을 띤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에서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주니 족과 모든 사람, 심지어 부부 간에서도 시기와 배신을 해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려는 도부 족과,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붓더라도 상대편에게 열등감을 주어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려는 아메리카의 북서 해안의 문화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비슷한 구석이 없다. 모든 문화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발전된다는 논리 하에서 본다면 전혀 맞지 않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장례식이란 죽은 사람에 대해 슬퍼하는 행위이고 그것을 의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개인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는 주니 족에서 이루어지는 장례식처럼 극도로 간소하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은 배우자가 죽었을 경우, 망자의 배우자가 죽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치부하고 망자의 배우자에게 해꼬지를 하는 도부 족과 친족의 죽음이 그 가문에게 치욕을 가져다준다며 다른 가문의 동일한 계급을 가진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부족의 장례식 모습으로는 모든 문화에서 장례식이란 의식이 죽은 자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가진다. 여기서 문화의 상대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문화에서 어울리지 않는 성향을 가진 개인들이 비정상인의 취급을 받는 것도 다른 설명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 문화에서 황홀경을 경험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규정되지만 사막지대의 인디언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아주 바람직한 행동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문화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그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문화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취적이고 자신의 성질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주니 족 사회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 문화권에서는 반사회인으로서 엄지손가락만으로 매달리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아파치 족에서는 환영할 만한 행동이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반사회적인 사람들 중에서는 다른 문화에서는 환영받을 수도 있는 것이니,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까지는 다 동의할만한데 이 주장이 왠지 석연치 않은 것은 그녀가 동성애자인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듯이 한 개인이 속해있는 문화의 패턴을 거슬리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에 나도 동성연애를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명백히 인간의 종족 보전의 관점에서 봐도 인륜을 거스르는 습성이 아닌가. 하지만 그녀가 세 부족들의 경우를 들어 문화의 상대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만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종 우월론자들이 쉽게 내뱉는 말들이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점에서는 그녀의 업적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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