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황진순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내가 언제 깨달았는지는 몰라도, 실제 사랑이 그렇기에 로맨스소설도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 표지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보게 되지만 실제로 내 곁에 가까이 두는 것은 바로 그런 책들이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로맨스들은 어찌보면 세태를 반영하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젠 너무 정도를 벗어난다 싶을 정도로 가볍고 유쾌하고 장난인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 사랑도 소중하지가 않고, 어쩌다 다가오는 사랑이 장난스레 다가가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삶이 바빠서 그렇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읽는 책이다 보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읽고 나면 씁쓸함이 남는 것이 정말 별로다. 그런데 이런 로맨스소설을 좋아하지만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갸웃하면서 생각해보지만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도 몇 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는데... 그런데 이 책은 아무런 정보없이 봤다가 그 사랑의 깊이에, 그 외로움의 깊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꺼이꺼이 울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빌려서 보고 너무 좋아서 사버렸다. 스물을 갓 넘길 즈음, 서울에 와서 어느 병원 접수부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병원 파티에서 술을 먹고 일을 치러 버렸다. 낯선 남자하고, 그것도 술김에~ 사실 이런 설정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냥 내용이 좋아 넘어가련다. 한 가지 말해둔다면, 난 술이란 음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취중 진담이란 말도 있고, 친해지기 위해 으레 술을 먹는다지만, 사람에게서 이성을 앗아가버리는 음료에 의해 저질러진 일에 그 사람의 선택은 없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거다. 거기에 운명이 끼여들 자리는 없었다. 여주인공 해주는 낯선 서울의 모습에 적응도 안되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파티에도 괜히 왔다고 자책하면서 우연히 들어간 병실에서 낯선 남자와 어이없게 첫날밤을 치른다. 그녀에게는 다행인 점은 그 만남이 그에게도 첫날밤이었다는 것이고, 그가 사악하거나 포악한 인간이 아니라 평소부터 그녀가 흠모했다는 것이 두 번째 다행인 점이다. 그러니까 그 우연한 만남의 결과로부터, 소설이 전개된다.

 

바다를 벗삼아 평생을 살아왔던 - 서울로 일하러 갔던 3년을 제외하면 - 해주에게 서울은 답답한 도시, 낯선 도시, 무서운 도시일 뿐이었다. 그런 무서운 도시에서 해주는 연약하고, 수줍음이 많고,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주눅이 들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반면에, 서울은 흠모하는 두가 살고 있는 도시, 사랑하는 아들 호가 생긴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긴 하지만. 해주에게는 서울에 대한 좋은 기억은 바로 그거 하나밖에는 없다. 호가 생겼다는 그 사실, 그것도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말이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십 년 전 첫날 밤이 지나고 난 후에 그렇게도 연약하고 가냘프고 어리숙했던 해주가 큰 일을 저질러버렸다. 어떠한 남자라도 용서하지 못할 일을.. 그것은 바로 거짓말!! 평생을 결혼하지 않겠다는, 책임질 일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두가 그녀에게 그 일에 대한 결과가 있었냐고 물었을 때, 너무나 차가워보이는 그의 모습에, 냉정하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당당하게 "아니요!"를 외쳐버렸던 것이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너무 다행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말이 나오든 결국은 똑같았을 거라는 데에 자위를 하며 그를 보내버렸다.

 

난 이런 상황에서 무어라고 했을까. 결혼을 사랑이란 이유 말고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제자식을 모르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해주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난 좀 아쉽다. 두의 환경을 알았다면 해주가 한 거짓말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그녀도 이해했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그를 지켜주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는 지금은, 아마도 십 년  전에 억지로 결혼을 했다면 두에게도, 해주에게도 안 좋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두가 호를 모르고 살아온 것이나 호에게 아빠를 빼앗은 것은 정말 나쁜 일이지만, 그 당시의 두와 해주 모두 사랑없는 결혼을 성공시킬 정도로 이해심이나 포용력이 넓지 않았을 테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해주가 그럴 수도 없고, 결혼이라면 죽도록 싫어하는 두가 그럴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십 년이 지나고 난 뒤 두가 아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아내인 해주를 신경쓰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녀를 이해할 만큼의 포용력이 생겼으니까 서로에게 좋은 방향이었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아이만 만들었을 뿐, 생판 낯선 타인이었던 두 사람이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도 나름 흥미진진해서 이 커플 이야기에 흥미를 더해주는 듯 싶다. 평생을 절제해왔던 두에게도 사랑의 행복이 찾아와서, 평생 외롭게만 보내왔던 해주에게도 가정의 행복이 찾아와서 정말 다행스런 소설이었다. 그런데, 다시보니 내가 어디에서 눈물을 흘렸는지가 생각이 안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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