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우리시대의 논리 12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을 읽고나서 2007년에 일어났던 석궁 사건을 알게 되고, 대학이나 법원 같은 기득권의 세계에서는 약자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법원에 가본적이 없어서, 무시무시한 사법부와 조우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법이라는 것이 정당하고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악법도 법이다"는 말에도 표현된 것처럼 간혹 악법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국민의 권리로 개정을 요구하면 쉽지는 않아도 폐지될 것이라고 막연히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처럼, 현재 법을 집행해야 할 법관들이 "의도적으로" 법을 어길 수 있으리라곤, 그런 법관들이 실제로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약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법을 어기면서까지, 아니면 법관의 의무를 망각하면서까지 형을 집행해버리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를 구제할 방법은 있을까. 이 책에 나왔던 다른 사법 피해자들이 한 말처럼,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서 "잘못했어요."라고 한 마디로 석방이 된다면 누가 끝까지 거부를 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가족과 직장과 자유를 버리고... 21세기가 도래한 이 시대에 마치 일제강점기 때 3 · 1 운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고문을 당하는 독립운동가들로 보이는 것 같은 착시가 드는 건 왜인지...

 

석궁 사건은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 교수가 대학을 상대로 낸 교수 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보복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으로 김명호 교수는 현재 징역 4년 형으로 복역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원인이 된 교수 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은 1995년 대학별 입학고사 수학문제 채점위원으로 있던 김 교수가 출제 오류가 난 문제에 대해 이의 제기한 것을 가지고 부교수 임용에 탈락된 것을 심사해달라고 청한 것이었다. 원래 부교수 임용은 연구논문으로 결정되는데, 김 교수는 5년 동안 재직하면서 발표한 세 편의 논문이 전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에 가입돼 있는 미국 『수리물리』와 『현대물리학』에 실렸음에도 부적격 판정을 받아 그리된 것이다. 부정입학을 지적했던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교수를 대학당국의 위신 때문에 김 교수를 희생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가 패소되고 그 이유를 들어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일단 교수의 자질을 문제 삼았는데, 그의 깐깐하고 대쪽같은 성품 때문에 교수 간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 윗선에서 뭐라고 하면 바로 굽신대어야 하는 권위주의를 문제삼는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우수한 성대 학생을 다른 학교로 보내버린 점을 해교 이유로 든 것은 정말 말로 안된 이야기다. 이 말을 들은 한 제자는 "이게 해교 행위이면 유학 보내는 건 매국 행위인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게다가 판결문의 가장 압권인 내용은 따로 있다. "문제의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보복을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정당한 원칙을 주장하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을 할 것이면, 스스로 자신이 대학 교원으로서 지녀야 할 다른 덕목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였어야 할 것인데"(p. 46)라는 부분이다. 용기 있는 행동을 조롱하고 그 대신 자신의 인격 향상에 더 노력했어야 한다고 비꼬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한심했다. 너무 직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잘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지적한 것까지 폄하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 판결문을 두고, 옆에서 살인하려는 사람을 말리기 전에는 먼저 자신의 인격이 바른지 확인해야 되는 짓이라며 조소했을 정도다. 그러니까 대학과 법원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사회적 약자인 김 교수를 희생양 삼은 것이라는 건데, 여기서부터 사건의 발단이 시작된다.

 

패소한 것만 알고 간 김 교수가 담당판사를 찾아가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그 때 석궁을 들고 간 것이다. 목이 곧은 사법부를 깨기 위해서는 뭔가 강한 것이 필요했는지 석궁을 들고 간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서부터 살인미수죄니 과실치사죄니 어쩌니 하면서 지진한 법정공방이 시작되었다. 민사소송은 법원이 판결하는 것이지만, 형사소송은 피의자와 피해자가 서로 합의를 하면 되는 문제라 주변에서 합의를 하라고 해도 김 교수는 끝까지 완강했다. "법을 고의로 무시하는 판사들처럼 무서운 범죄자는 없습니다. 그들의 판결문은 다용도용 흉기이며, 본인은 수십만, 수백만의 그 흉기에 당한 피해자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본인은 ... 법 무시하고 판결하는 판사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사실 나도 김 교수가 석궁을 들고 간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생각해서 모든 판사들이 판결을 내린 다음에 이렇게 기습을 당한다면 그것도 올바른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이 경우에서는 김 교수가 억울하게 당한 것이여서 긍정적인 입장으로 쏠릴 수 있겠지만, 실제로 죄를 지어놓고도 패소했다고 앙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에 이것은 판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일 테다. 다만, 그가 석궁을 들고 가지 않았다면 그의 사건이 이렇게까지 언론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란 씁쓸한 생각은 들지만.

 

어쨌든 판결을 내리는 판사에게 도전을 했으니 사법부측에서는 절대 가만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공판하는 과정을 보니 완전히 희극감이다. 검사측에서 유죄를 요구하면서 제시한 증거에 대해 반대 증거를 제출하기만 하면 무죄로 나올 수 있고, 검사측에서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당연히 무죄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상식대로, 아니 법대로 진행되지 못한 공판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판사를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판사들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죄인 사람을 우겨넣어서 유죄로 둔갑시키는 것은 또 무엔가. 정말 내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까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하고 싶다. 만약 판사가 의도성을 가지고 없는 죄를 있다고 실형을 선고해버리면 구제할 다른 방법은 있을까. 현재로 봐선 없다가 정답이다. 아무리 삼심제도 있다지만 아예 윗선에서부터 내려온 지시를 거스릴 판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법권의 피해자들이 지금도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너무 강경하게 나간 김 교수의 태도도 문제시한다. 그가 하는 행동의 취지는 좋은데, 그 과정에서 너무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인 시위를 하면서 피켓에다가 담당판사의 실명과 어떤 죄를 지었다고 써놓으면 그 누가 기분이 좋겠나 말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내어 10년 전에 무너졌던 명예를 회복해내는 것일 텐데 사법부의 높은 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더 단단히 더 강경하게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보니까 인권운동가로 나설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그런 사람이 이 나라에 많이 나타나서 우리가 변하는데 일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너무 곧으면 쉬이 부러지듯이 그가 희망을 잃고 있을까봐 그것이 걱정된다. 

 

이 책을 덮으면서 바로 얼마 전에 본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범죄자를 잡으면서 미국이 아닌 곳에다가 수용소를 설치해놓고 현상금 때문에 잡혀온 많은 사람들을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재판을 하지도 않고 무기한 고문하고 감금해놓는 그런 관타나모 수용소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은 너무 과한 생각일까. 미국법에 수감자들을 위한 법이 있어도 미국이 아니여서 미국법에 따라 그들을 대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관타나모나(관타나모 안에 있는 이구아나는 미국법에 따라 보호됨에도 불구하고) 한국 헌법에 법치주의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법대로 판결하지 않은 김용호 판사님, 이회기 판사님, 신태길 판사님이나 다 똑같은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윗선에서 어떠한 압력이 있더라도 원래 판사라는 자리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어렸을 적 법을 외우는 것이 좋아 법을 공부해볼까 했다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판결을 내려도 잘못 내려지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덜된 인간인 내가 갈 길이 아니라 그만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위 세 판사님들은 참으로 얼굴이 두꺼운 것이 아닐까 싶다. 한없이 자랑스러웠던 조국, 미국에 관타나모가 있다는 사실로 그 책을 쓴 저자가 조국이 부끄럽다고 한 말을 기억한다. 난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은 대한민국이건만 이번 일로 정말 더 경악스러울 뿐이다. 내 아버지가, 내 남편이, 내 오빠가, 내 동생이, 내 자식이 아무 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사법권에 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차가운 감방에 갇혀있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그래도 양심에 털이 안 나서 성대의 부정 시험 출제를 고발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판사들에 대해서 고소를 하는 김명호 교수님의 훌륭한 일을 후대의 사람들은 알아줄 터이다. 이런, 어쩌나~ 김용호 판사님, 이회기 판사님, 신태길 판사님들의 자식들이 이 사건에 대해 알면 좀 부끄러지지 않을까. 하긴 그럴 정도의 양심이 있었다면야 시작도 안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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