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투 커버 - 책 읽는 여자
로버트 크레이그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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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두 시무렵에 자려고 들어와서 그날 배송받은 책표지를 멀거니 구경하다가 첫장을 펼쳐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오늘 아침, 눈이 떠지질 않아서 밍기적대면서 출근 준비를 한 것이나 출근이 늦어 상사에게 한 소리를 들은 사연의 원인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렇게나 눈이 피곤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일 테다. 겨우 눈을 붙인 게 새벽 4시 조금 넘어서였으니, 그리고 눕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 속으로 주인공 타냐의 심리를 분석하느라 말똥말똥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용케 출근을 한 것이 내심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렇게나 재미있었느냐고 물으면, 딱히 재미있었다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주인공 타냐의 행동이나 생각이나 말본새가 나하고는 영 맞지 않았으니까. 독신이고, 지루하나 안정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만한 일터가 확실하게 가지고 있고, 그녀가 주변의 남자들에게 싫다고 퇴짜를 놓을지언정 절대 싫다는 퇴짜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는 주인공이여서 그렇게 오만할 수 있었던 걸까. 소중한 사람이 돌아가셨음에도 장례식에조차 가질 않았던 그녀의 심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 죽음이 그녀 때문이라고 말해도 하등 잘못이 없었던 상황이었는데도.

 

그것만 빼면 그녀의 악의적인 다른 행동은 조금은 이해될 만하기도 하다. 남녀관계에서 이별을 먼저 고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다는 것쯤은 우리 다 알지 않는가. 보통은 이별을 생각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와 타샤와의 차이점이겠지만. 어쨌든 어떤 객관적인 이유와는 상관없이 있으나마나하다고 결론지어진 남자 친구 리처드를 차기 위해 타냐가 머리를 얼마나 많이 굴리는지, 보는 나조차도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왜 주변에 있는 남자 모두 그리 쫓아버리지 못해 안달이야, 너 행복하고 싶다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행복이 찾아오지 않겠어? 그런데 오히려 타샤는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고 가기 위해 애쓴다, 혹은 불행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느낌이 얼핏 느껴졌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덮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타샤,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상처주고 불행으로 몰고 갈까봐, 그녀가 누군가에게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다칠까봐,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그렇게나 속을 끓이면서 봤던 것 같다. 그 쪽 길이 아니라구우~~ 제발 이 쪽으로 나와~~ 이 사람을 만나지 마~~ 아니아니, 그 사람은 버려선 안돼~~

 

타냐는, 스무살 첫사랑이었던 마틴을 - 머릿속만 - 아직까지도 세상 최고의 남자로 자리매김을 해놓고, 성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편하게 리처드를 이용하는 아주아주 사악한 여자이다. 여기서의 사악함은 의도적으로 이용해서 단물쓴물 다 빨아먹어버리는 그런 꽃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이 아닌 관계임에도 사랑인 척, 혹은 서로의 관계에서 가능성이 있는 척을 하면서 남자를 방심하게 한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사실 전혀 헤어질 이유가 없음에도 리처드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유는 귀찮아서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인물들은 3천여 권의 장서보다도 타샤에게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러던 그녀에게 또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이제껏 만났던 남자들 중에서도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 타샤와 격렬한 토론이 가능한 지적인 남자이기에 탸사도 많이 끌렸다. 그럼에도 그와의 관계도 끊길 갈망하는 타샤는 참...? 아무 이유도 없이 - 찾아보면 진짜 이유가 있긴 하지만 - 자신에게 친절한 친구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마지막으로 남자들에게도 관계 끊길 강요하는 그녀는 내 눈에는 정말 한심하게 보인다. (혹 내가 그런가?) 그러나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내서 그녀와 알콩달콩 살아가기 위해 어떤 문제라도 부딪쳐서 이겨줄 남자가 있기에 그녀는 정말 행운아다. 부러워, 정말... 그녀가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녀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데...(내가 질투에 제정신이 아니군.)

 

그건 그렇고,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크레이그는 여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칭찬을 받았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여자를 너무 한 쪽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가 한다. 주인공이 책만 읽는다고 해서 사회성도 없고, 배려심도 없고, 지엽적인 것에만 골몰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 아닌데 말이다. 특히나 남들보다 제가 우선이라고 주장만 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나도 주인공 타샤만큼 책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같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저런 식의 캐릭터로 그려놓은 것이 그리 썩 좋은 기분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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