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그림처럼 - 나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일상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서문에서 말하길, 빠른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해보자고, 즐겨보자고 이 책을 썼다 했다. 아니,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어 놓기 위해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는 방식대로 자기 주장을 편 게 아니라 그저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느긋느긋하게 일러준 것이다. 그저 당신도, 그림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아니 아름답다고. 이젠 주위를 둘러보며 쉬어 가도 좋다고 위로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한없이 느린 거북이는 속도면에서 토끼에게 비한다면 패배감만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느린 만큼 거북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넉넉하니까, 토끼가 하루 만에 경험하는 것들을 거북이는 한 달 동안 나누어 경험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빨리, 빨리를 외친다고 해도 자신 만의 속도를 찾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 법, 이제는 자신 만의 속도를 찾을 때가 되었다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껴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저자는 이 책 말고도 『그림에, 마음을 놓다』라는 심리치유에세이도 펴냈다고 하는데, 역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고민한 사람이여서 그런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참으로 유연했다. 내가 소식이 늦어 이주인 저자의 이름을 잘 몰랐었는데, 그래서 그다지 알려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내 생각을 부정이라도 하듯 유려한 글솜씨로 나를 멀리 그림 속으로 데려가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독특한 것은 따로 있다. 읽는 그 당시에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겠고,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책을 덮고 돌아서서 생각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머릿속에 남아있지가 않았던 것이다. 에세이이다보니 비문학처럼 딱딱 정리가 안 되는 것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주제가 사르륵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정말 보통의 내공은 아닐 듯 싶다. 정말 책을 펴면 그 속으로 빠져들 것처럼 흡입력이 강하고 마음까지도 평안해지는 것이 자기 전에 한 장씩 읽으면 딱이었으니. 읽고 자도 머릿속이 많은 정보로 복잡해질 염려도 없으니 얼마나 좋으랴.

 

이 책에서 이주은 저자가 초점을 맞춘 것은 그림 속에 드러난 물건이나 분위기이다. 그림 속에 나타난 물건이나 분위기를 보고 그 당시에 그것이 가지는 영향력이나 의미를 살펴본다. 행복한 가정이 성공의 지표가 된 18세기에는 모성애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 각광을 받았다. 콩스탕스 마예의 「행복한 어머니」와 같이. 루소가 행복한 가정이 국가의 든든한 초석이라고 주장했기에 많은 화가들이 그의 영향으로 본능적인 모성애가 나타나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류층에서는 손님이 오셨을 때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척이라도 해야했을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가식이다. 그리고 19세기 말의 지식인들은 수더분한 옷차림이나 털복숭이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깔끔하고 오만할 정도로 세련된 댄디가 많았단다. 속된 대중과 구별짓기 위해 옷차림에 특별히 신경썼던 엘리트들을 댄디라고 부르는데 조바니 볼디니의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의 초상」을 보면 댄디 문화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 때부터 넥타이는 개성을 표현하는 스타일로 자기매김되어 다양한 디자인의 넥타이가 쏟아져나왔고, 심지어 넥타이 매는 다양한 방법이 잡지에 소개되기까지 했다고 하니 넥타이는 이제 완전히 하나의 문화코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그림에 숨겨진 여러 문화 코드를 보면서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얽매인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벗어버리고 자신 만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무한 격려를 해준다. 그다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진 않다고 해도, 그림을 통해 다른 세상을 살며시 엿보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을 볼 가치는 충분한 듯 싶다. 정말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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