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그곳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관타나모에 대해서 들은 경로는 이 책이 유일하다. 어쩜, 내가 생각해도 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을까.

9.11 테러가 일어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 정부가, 아니 부시 정부가 탈레반이나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 대대적인 포상금을 걸었다.

그리고선 잡힌 사람들 - 진짜 테러리스트이든 그저 현상금에 팔려왔건간에 - 은 어떤 재판도 받지 않고

바로 쿠바에 위치한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것도 언제 풀려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이 말이다.

죄가 있어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면 몇 년형을 살고 나면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라도 가져볼 텐데 이건 뭐하는 상황인건지... 

가만 있자, 내가 잘못 배운건가. 모든 사람들은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엔 무죄를 추정된다고 배웠는데...

미국 정부의 헌번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은건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미국 변호인이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 문제를

끄집어낼라치면 그곳은 미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잡아떼기만 했다.

그러나 관타나모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이구아나도 보호를 받는다.

관타나모를 벗어나 쿠바 땅에 들어간 이구아나는 인간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는데 관타나모에서는 미국의 법률 대로 이구아나를 보호한다.

그럼, 인간이 이구아나보다도 못하다는 거야, 뭐야~~~

 

저자인 마비쉬 칸은 법학도로서 관타나모 수용소의 존재야말로 미국이 옹호하는 가치에 대한 노골적인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수감자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미국 내에서 강간범이나 살인범에게조차 적용되는 법적 정의가 그들에게도 부여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수감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부인하는 법적인 구멍을 어떻게 자기네 정부가 - 자랑스럽기 그지 없는,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에게는 주어지지 못하는 권리를 보장해준 자신의 조국이 - 만들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껏 배워왔던 것은 다 헛된 것이었단 말인가. 

그런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현상이 끔찍하게도 안타까웠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파쉬툰어를 할 줄 알기에 무료 통역봉사를 해주고 싶다고 연락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 두려웠다. 혹시나 악랄한 무장세력이나 테러리스트를 만나게 되는 것을 예상하면서...

그러나 이게 웬걸~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잖아. 아니, 오히려 그 모진 고문에도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선량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아~~ 이 안타까운 일들을 어찌 할까.

 

나는 세계적으로 약자인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녀보단 조금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그것을 수용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이가 없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만한 미국 정부의 짓거리는 바로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했다는 명분으로 덮을 있을테니. 

과거 우리 정부가 독재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못된 짓거리와 다를 바 없이 말이다.

아니면 이제껏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기에 약한 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라거나...

그런 이유말고는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여기, 관타나모에서 일어난다.

미군은 쿠바에서 망명하기 위해 다리 하나까지 잘려가며 관타나모로 도망오는 사람은 받아들이면서

아프간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고 수감하고 있다. 단지 미국에게 밉보인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것이 바로 미국의 실상이다. 세계 경찰이라는 명예를 뒤집어 쓰고 지 혼자서만 잘난 척을 죄다 하더니만

속으로는 꽁해가지고 누가 건들릴라치면 그것을 약한 사람들에게 화를 풀다니...

물론 관타나모 수용소에도 악명높은 테러리스트가 있다.

9.11 사태 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 중에는 그들에게는 혹 고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당연히 고문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비쉬 칸이 만난 많은 수감자들은 전혀 테러리스트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무자비하게!!

미국 법률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고문을 여기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어찌 해야 할까. 다른 나라에서 인권 탄압을 하면 세계 경찰노릇을 톡톡히 하던 미국이, 이렇게 인권을 탄압하니 이제 누가 나설까.

UN이? 적십자가? 어떤 조직도, 어떤 기구도 이 일을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이 일은 단지 어떤 세력이 아니라, 세계 시민들이 들고 나서야 할 일이다.

저 멀리 있어 나와는 상관없는 아프간 사람들이 갇혀있다고 해서 내 먹고사는 것이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은 바로 지금, 바로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똘똘 뭉쳐야 한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인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인권을 보장해주길 기다려서도 안 된다.

그저 우리는 소수의 힘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마비쉬 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단순히 기도뿐 일지라도,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뿐 일지라도, 편지 한 장 보내는 것뿐 일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을까.

우리가 안 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이라면 이제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