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호적신호를 하지 않았기에 열살인지도 아홉살인지도 잘 모르는 누주드가 이혼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초등학교 2학년 또는 3학년밖에 되지 않는 아이가 벌써부터 이혼녀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아무리 예멘이라는 나라에서 종교적인 이유에서든, 강간 당할 두려움 때문이든, 가난 때문이든 조혼을 한다지만, 이것은 그렇게 방치해 둔 어른들의 잘못이 아닐까. 여자라면 평생 남자에게 의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예멘에서는 가족 안에서 결정되는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언권조차 없다. 그것이 자신의 결혼 문제일지라도 말이다.
 
예멘은 행복한 아라비아라는 뜻을 가진 ’아라비아 펠릭스’라는 별칭을 오랫동안 간직한 나라이다. 솔로몬과의 연애로도, 성경과 코란에도 그 자취가 남아있는 시바 여왕이 다스렸던 나라로 신비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했다.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 면적의 2.5배 정도의 영토에 아라비아 반도 끝자락이자 홍해 입구인 아덴 만 앞에 딱 박혀있는 이 나라는 고대에 무역로 역할을 하던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향신료와 계피와 직물 따위를 팔던 카라반 상인들이 자주 왕래했단다. 이런 나라를 주변에서 호시탐탐 노려왔다. 에티오피아인들, 페르시아인들, 포르투갈 사람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인들, 영국인들, 러시아인까지... 정말 서로 갖지 못해 안달이 난 나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멘은 예로부터 1,001가지의 보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다. 석유, 꿀, 음악, 시, 향신료, 유적지... 그래서 1990년에 통일을 이루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많은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 땅에 누주드가 태어났다. 누주드가 태어난 예멘 북쪽의 하자 주 주지사가 통치하는 와디라 계곡이 있는 카르지에서는 그야말로 자연이 놀이터였다. 커다란 나무 몸통이며, 둔중한 바위들이며, 움푹 파인 동굴들이 있어 언제든지 몸을 숨길 수 있게 하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와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누주드의 엄마는 열여섯 번 아이들을 가졌지만 그 중 세 번은 유산을 하고, 네 번은 약을 잘못 써서 4살 전에 잃어버렸다. 카르지는 의사가 들어오기에는 너무나 먼 곳이라 한 번도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멘은 분만 중의 아이 사망률과 소아 사망률이 세계 1위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누주드에겐 어느 아이들과 같은 웃음이 있었다. 80마리의 양과 네 마리의 소를 쳐서 신선한 버터와 요구르트와 치즈를 먹을 수 있고, 벌을 쳐서 맛난 꿀을 얻기까지 하는 그곳은 자연의 천국이었다. 다만 남자형제들과는 달리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것말고는 말이다.
 
그러나 스캔들이 생긴 후, 누주드의 가족은 낯선 도시로 쫓겨나야 했다. 마을 주민들이 누주드의 가족이 카르지의 명예를 우롱했다고, 명성에 흠집을 냈다고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 실은 말이다, 약자였던 누주드의 가족이 당한 것이었다. 도시로 가서 빈민이 되었던 누주드의 가족은 점점 악화일로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누주드의 아버지는 남아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세를 내기 위해서,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 누주드를 결혼시켰다. 아홉살인지 열살인지도 모르는 누주드를 말이다. 지참금을 받고서 누주드와 결혼한 사내는 누주드보다 세 배나 나이가 많았다. 사춘기가 될 때까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아버지와 약속을 하고도, 다른 아이들처럼 놀게 해주겠다고 모나 언니와 약속을 하고도 아주 쉽게 저버린 야만인 같은 그 사내는 누주드와 결혼한 그날부터 누주드에게 악몽 같은 결혼생활을 안겨 주었다. 싫다고 아프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누주드를 폭행하고 덮쳤던 밤이 두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 겨우 허락을 받아 친정으로 돌아온 이후에 어떻게든 이 지옥을 빠져나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예멘은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이다. 게다가 가족의 명성을 더럽히면 살해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여성의 권리는 없다.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에는 바로 이혼도 포함된다. 샤라프, 즉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남편을 떠나올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런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반론도 제시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누주드를 보호해주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불가능해 체념한 모나 언니를 보면서 누주드는 그녀의 결혼을 유일하게 반대한 둘째 엄마, 도울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말에 도울라 엄마는 법원에 갈 수밖에 없다고, 그날 구걸해서 모은 돈을 주며 누주드를 지지해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법원에 가서 다짜고짜 판사에게 데려다달라고 하고... 판사를 만나서 이혼을 주장하고... 누주드를 측은히 여긴 판사의 가족에게서 보살핌을 받고... 남편과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어두고...결국은.... 이혼을 판결해주었다. 그 때 많은 도움이 되어 준 사람이 인권변호사인 샤다였다.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주고, 안아주고, 인정해주었다. 그래서 열살 누주드는 세계 최연소 이혼녀가 되고, 작은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아무것도 해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주드를 이혼녀로 만든 가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누주드의 가족은 일자리가 없다. 그러니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게다가 예멘에는 이렇게 가난 때문에 팔려가는 여자아이들이 많다. 이 어린 아이들을 어찌 다 구할 수 있을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누주드’의 이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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