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피스 공화국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어제 또 한국소설을 다 읽었다. 엊그제께 배명훈 작가의 <타워>를 읽었는데 바로 다음날 또 한국소설을 읽은 것을 보니, 요즘 한국소설이 많이 한국소설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어제 본 <타워>도 그렇고, 이번에 본 <우주피스 공화국>도 그렇고, 절대 한국적이지 않다. 그냥 요즘 세태를 반영했다고나 할까. 그 이야기는 이제 어느 곳을 가나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겠지... 이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 소설은 참으로 묘하다. 한('훈'으로도 발음됨)에서 온 한 남자가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참으로 몽환적이라고 해야 할지, 우울하다고 해야 할지, 한 마디로 말하기가 헷갈리는 소설이다. 그저 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고 있으면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만이 자욱하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진실을 가리는 그 무언가처럼.
 
할이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가기 위해 잠시 리투아니아에 들렀다. 그 곳에서 아주 가깝다던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데 처음부터 막혀버렸다. 대학교수이지만 부업으로 택시운전을 한다는 요나스의 택시에 몸을 싣고 엽서에 쓰인 주소로 가보지만 몇 시간이 걸려도 찾지 못하고 정작 도착한 곳은 호텔 우주피스 공화국이었다. 화를 내려다가 체념한 할은 그곳에서 묵기로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은 듯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그를 바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은 우주피스 공화국은 예전에 없어졌고, 그저 그것을 농담삼아 강 건너 편(리투아니아어로 '우주피스')에 우주피스 공화국이란 나라를 가상으로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에겐 그저 농담일 수 없었다. 자신이 바로 우주피스 공화국에서 태어났고 대사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고국을 떠나왔는데 이제 독립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유해를 고국에 묻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말이다.
 
여기서 가장 이상한 것은 할의 원래 직업이 무언지,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를 제외하고 다 어디에 있는지, 친구나 애인은 있는지 등의 소소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할에게는 오로지 우주피스 공화국만이 모든 것인 양 그렇게 막무가내로 찾기만 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돈도 우주피스 공화국에 가면 아무 쓸모가 없을 거라며 거지나 꽃 파는 소녀들에게 마구잡이로 퍼주고 말이다. 그렇다고 할이 무지하거나 독선적이거나 오만한 사람은 또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유언을 이행하려는 효성도 지극하고,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도 간직하고 있으며, 약한 자를 도와주려는 갸륵한 마음씨까지 있다. 게다가 자신의 눈에는 손님의 지갑이나 털려고 못된 플레이를 하는 택시기사에게도 선심을 쓰며 후한 팁을 건네고, 할의 체류 연장을 하기 위해 통역해주는 빌마가 엉뚱하게 통역을 하더라도 화를 내거나 무안을 주지 않고 그 상황을 지켜보기까지 한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리마스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그는 어찌보면 미련하게도 보이는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다. 나로선 전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에는 할이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지 못하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예의주시하며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무언가 은밀하고도 끔찍한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읽도록 그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할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없었다. 게다가 273페이지나 되는 분량 속에 같은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데자뷰 현상을 보는 듯 했다. 해설을 보니 그런 것을 의도한 듯도 싶은데, 내겐 너무 어려웠다고나 할까. 할이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기 위해 리투아니아로 온 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져 버린 듯한 결말엔 우울함, 안개조차도 싫다고 도망가버릴 짙은 우울함 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듯 하다. 현대 사회가 이렇게나 우울하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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