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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뜬 거울
최학 지음 / 문예사조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시란 무얼까.
시를 좋아한다고,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시보다는
끓는 감정을 식히고 식혀서 더 이상 그 감정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된
절제된 시를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마는 도통 시가 무언지는 알지 못하는 시맹(詩盲)인 나로서는 시를... 그 알지도 못하는 시에 대해...
겁도 없이 시평을 쓰겠다고 나선 나도 참으로 간댕이가 부은 놈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 말이 있다는데에...
나는야, 원래 상상력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놈이여서 그런지
아무리 읽어도 잡히지 않는 시, 그려지지 않는 싫어한다. 내가 원래 형이하학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서도...
그래서 최학 시인의 모든 시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였다. 읽어도 씹어도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시도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좋아할 만한 감정의 절제를 추구한 시와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새롭게, 그리고 낯설게 보여준 시가 있어
그것에 대해서만 소개를 해보련다.
<호숫가에서>
하늘에 빌던 손 / 다 놓아 두고 // 남은 고독마저 / 버리고 / 바람으로 남아 //
풀벌레 소리 / 적막을 깨우면 // 호수에 뜬 별 / 가슴에 담는다. (p. 65)
정말 잔잔한 호숫가가 그려지지 않는가. 단단하고도 매끄러운 무언가가 만져지는 것처럼 아주 맘에 든다. 특히 2연에서 '남은 고독마저 / 버리고 / 바람으로 남'는다니 이 어찌 인간으로서 바라마지 않을 수 있겠는지...
저 밑바닥 모든 것을 버린 후에도 남아 있는 고독마저 버려두고 자신은 바람으로 남았다니,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속세를 버린 득도의 삶을 깨달은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지... 멋지다~~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 되고픈데, 내가 아는 한 저런 멋진 놈이 되지 못하기에, 항상 이렇게 시로만 만나고 행복해할 뿐이다.
<성냥의 자서自敍>
좁은 밀실 / 질서의 표본처럼 / 말없는 말하며 / 가지런히 누워 있다 //
휴화산 같은 / 유황 한 덩이 심장에 품고 / 죽은 듯 살아있는 불의 씨앗 /
출전 앞둔 병사처럼 / 마찰의 순간 기다린다 //
한 삽의 부토가 / 뿌리에 밑거름 되듯 / 산허리 벙커 속 전사되어 / 혼신의 불꽃 간직하고 산다. (p. 67)
제목을 읽지 않고 읽어도 왠지 연상되는 시는 항상 내게 미소를 안겨준다. 씨-익^-^
아이들용이라는 동시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런 동시가 훨씬 더 끌린다. 간단하면서도 그 안에 진리를 머금고 있는...
성냥이 사라진지 오래인 요즘 떠올리기엔,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난 모양도 이쁘고 쓰임도 독특한 성냥을 모았었다.
\아! 진짜 이뻤는데~ 내가 아빨 닮아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잡동사니를 주섬주섬 모으는 게 취미였었는데....
동전, 우표, 전화카드, 조그만 완구류, 스티커, 단추, 리본.... 아마 모두 모으면 제법 되었을 텐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다.
성냥도 그 중 하나였었는데 그 성냥을 보고 있으면 맘이 안정되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수집품이었다는 만족감이 들어서일까. 성냥을 전사로 묘사한 것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저런 류의 시를 좋아하는지라... 성냥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어딘가 떨어져있을 성냥이나 주워모아 봐야겠다.
그런데 가만히 읊조리고 있노라면 그림이 그려지는 시도 있었다. 내게 그림 솜씨가 있었다면 여백에 그림이라도 그려볼까 싶을 만큼
선연하게 연상되는 시가 멋졌는데... 그게 <빈 집>(p. 42)이었다.
<빈 집>
임자 없는 사립문 / 검게 물든 문설주 / 장독대의 봉선화, 민들레는 / 외로움이 싫어 풀숲에 숨고 //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 토방의 신발은 / 온 몸이 부르트고 / 툇마루에 늙은 뒤주는 / 입 다문 채 말을 잃었다. //
비바람 쌓여 / 투박해진 마당에 / 고양이가 / 빈 하늘만 낚고 //
날마다 어둠이 내려도 /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 방에는 빛바랜 체취만이 / 빈집을 지키고 있다.
한 번만 봐도 쓸쓸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시이다... 내가 쓸쓸함, 고독을 좋아하는지 요런 게 마구 땡긴다~아우~
4연의 3행에 나온 '빛바랜 체취'는 정말 멋진 표현이다. 후각적인 심상에다가 시각적인 표현으로 쓸쓸함을 집어넣다니~~
그나저나 난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이 밝고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 봄에, 오월에, 처연함이 묻어나는 시나 좋아하고 있다니...
으-음, 어쨌거나 멋진 건 멋진 거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 차갑도록 시린 외로움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