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Nobless Club 10
김이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 내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한다며 책을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많이 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참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제껏 모든 책을 버스 안에서 보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만큼 내게 신기한 경험을 안겨주진 못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외계인이 등장하는 책이라 그리 현학적이고 깊이가 있는 책이라곤 할 수 없지만, 시종일관 내게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버스 안에서 킥킥 하고 웃다가 주위를 둘러보기도 수차례 했고, 책을 읽다가 내려야할 곳을 놓쳐서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리기도 했던 일도 부지기수다. 특히나, 신기했던 건 책 속의 주인공인 성우가 휴학한 날 경험한 이상한 일을 지켜보면서 내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일 자체가 신기한 일로 느껴졌던 거다. 보통 때 같으면 책을 상하게 하는 어떠한 일이라도 진저리치도록 싫어하는 내가, 이 책을 읽다가 버스 안에서 책을 떨어뜨리고 키득거리다가 책장을 구기는 등 여러 짓거리(?)했는데도 그리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니(그게 아마 내가 한 짓이어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정말 독특한 하루였다. 아마 하루종일 활기차게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소설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이 소설은 내 마음을 앗아가고, 현실의 걱정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아주 기특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내용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며 우울해하는 한 남자가 휴학하던 날, 외계인과 그를 잡으려는 FBI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여럿 이상한 일을 겪기도 하고, 우정을 되찾기도 하고,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등 아주 다채로운 감동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유가 있어서 소심해진 주인공은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해서 대학에 와서도 외로운 삶을 살아가던 중에 24시간 만에 난데없이 부자가 되고, 미국 정보기관에 취직하고, 외계인 친구가 생겨버렸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이렇다.

 



  이 이야기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이천여 마리의 북극곰 중 어느 유별난 북극곰에게서 시작한다.

  그 북극곰은 여느 북극곰과 다른 일을 하는 중이었다.

  북극곰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북극곰이 하는 일이란, 바다사자를 사냥하거나 잠을 자거나 얼음 바다를 헤엄치는 일뿐이다. 그들은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북극곰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송이가 얼음 평원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릴 것같이 조용한 밤이었다. 북극곰은 밤하늘에 펼쳐진 오로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코 끝에 떨어진 눈이 콧김에 녹아 사라졌다.

  북극곰은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P. 9)


 

 

엉뚱한가? 갑자기 북극곰이 등장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북극곰 이야기도 아주 중요한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나를 웃겼던 것은 이런 뜸금없는 북극곰 이야기를 등장시켜놓고선 작가가 설명하는 투였다. 그 외에도 소설 중간 중간에 상식적이면서도 상식저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나름 열심히 정리해서 설명해주면서 나중에는 완전 상식적인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듯한 전개를 보노라면 완전히 상식적인 나조차도 웃음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마련이다. 주인공 성우가 휴학하고 나서 집 근처의 카페에 취직하면서 카페 사장이자 FBI요원에게서 한 달에 4백만 원이나 받게 되었던 것부터 손님으로 고용된 카페 주인의 여동생과의 어이없는 대화, 그녀의 집사와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이들이 외계인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도 이 책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자기 별로 돌아가지 못한 외계인인 '전용관'은 지극히 인간 같은 면모가 있고, 외계인을 잡기 위해 카페를 열었다면서 카페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카페 사장이자 FBI요원, 그의 여동생, 그 여동생의 집사, 심지어 그 외계인을 보살피는 주인공인 성우까지도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것이(그것이 상식인지, 포옹력인지, 어울림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는 성우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이제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는 카페 사장의 여동생, 그런 동생이 안타까워서, 안타깝기에 더욱 위로해주는 법을 모르는 카페 사장까지 정말 뭔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아마도 그랬기에 주인공 성우에겐 이제까지 살았던 20년 평생보다 외계인을 만나고 카페에 취직을 했던 요 한,두 달 동안이 더욱 사람사는 것처럼 살았던 것은 아닌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은 없으면서도 항상 노력하려고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 달에 4백만 원이나 덥썩 안겨주지 못해 안달인 사장을 두면서도 놀고 먹으면서 농땡이를 피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성우이기에 외롭지 말라고 이렇게 외계인 친구들과 그로부터 연결된 많은 친구들로 가득찬 인생을 선물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성우는 힘들지 않을 거다. 외계인 뿐만 아니라 그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친구들이 곁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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