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우와~ 내가 책을 받아들고 나서 제일 처음으로 보는 것이 보통 책날개 앞에 있는 저자의 소개 - 그 중에서 그가 낸 책 목록을 주의깊게 본다 - 와 그 다음이 서문이다. 그런데 서문만 보고선 그 책에 대해서 확 반해버린 게 몇 있었는데 최근에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 이충웅 저자의 [문명의 관객]이었다. 서문에서부터 끌리는 책의 종류는 비문학 중에서 거의 사회/과학 분야가 많은데, -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분야인 철학은 서문부터 설레이긴 좀 어렵다. 그 분야는 아무래도 책의 서두에서부터 설레인다고나 할까. - 정말 이렇게 읽으면서 가슴이 뛰어보긴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오랫동안 설레였던 오빠 앞에서 서있던 경험을 다시 느끼게 하는 책이 바로 문학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참으로 행복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 책은 내가 좀 멀리 옮겨진 직장으로 가는 도중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의 독서가 어느 정도 인이 박힌 나조차 두통이 생기는 버스 안에서의 독서가 절대 후회되지 않을 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물론 그 날 집에 와서 두통약을 먹어야 잠들 수 있었지만 말이다. 버스 안에서 키득키득 웃을 수 없었던 게 조금 아쉬웠지만, 정말 평소에 내가 생각해왔던 답답함을 뻥 뚫어주어서 아주 만족스런 독서가 될 수 있었다.
부제가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이라 어찌보면 정말 딱딱하고 고루한 느낌이 나기도 한 제목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제목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전작인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에서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대중매체의 '문자 텍스트'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시각적이고 영상적인 텍스트, 혹은 영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단다. - 나중에 그의 전작도 한 번 봐야겠다. -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접하는 동영상이나 블로그, 영상 매체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담론이라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그런데 세 장에 달하는 서문만 보고도 설렘을 느꼈다는 나도, 처음엔 이 서문 때문에 당황했었다. 도대체 무신~ 야그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잡고 있는 감이 제대로 된 것인지~ 온갖 낯선 단어들이 내 눈을 가득 메웠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우리는 이 문명의 '관객'이 될 수 있는가?
현대 기술문명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공연에서
배우가 되지 않고 관객으로 한 발짝 물러나서 볼 수 있을까?
문명의 서사극은 '낯설게 하기' 기법이라는 것을 도대체 가지고나 있는 것일까?
그것이 거기에 없다면, 우리는 이 극을 자발적으로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 물음이 가능하다면 곧이어 다음 물음도 가능하다. 주인공도 아닌, 하필 '관객'이 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p. 6)
그런데 다음 순간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서 이 사람도 특별한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나랑 아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 이런 사회/인문 분야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한 가지 고민이다. 이 글을 쓴 저자는 정말 나랑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열등의식 - 이 들어서 아주 친근해졌다. 사실 저자가 나보다는 조금 더 예리한 시선을 가지고 미디어 속의 과학을, 사회를 분석해서 보는 것은 맞지만, 나도 그 정도는 한 번쯤 생각해봤던 일들을 활자화해서 생각을 분명히 할 수 있게 해준 거라 여기니 그나마 덜 거리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모든 장이 '낯설었고', 그래서 신선해서 좋았는데, 가장 충격이 컸던 분야는 <첫째 장 몸을 향한 욕망의 시선>의 <비만과 다이어트>였다. 종합 일간지에서 '다이어트'라는 어휘가 들어간 기사량이 1990년대 전반에 비해 1990년대 후반이 8배나 된다는 사실이나 체질량지수가 30이상(키 170에 몸무게 86.7킬로)이 비만인데 성인 비만 비율에서 (미국이 32.2%인데 비해) 우리는 2.4%(일본은 3.1%)밖에 안돼 다이어트 관련 장사가 되지 않으니까 체질량 지수 25~29.9(세계보건기구에선 과체중으로 분류함)까지 비만으로 판정하기로 한 것 등 정말 놀라운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중이 늘어가는 자연스러운 경향 탓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조사하면 40대 중반의 남자는 성인 비만 비율이 41.2%(체질량지수 25기준으로 해서)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최근에 들어 비만으로 취급되는 체질량지수 25~29.9 사이의 사람들이 가장 덜 죽는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체질량지수 25~29.9 사이의 사람들의 사망률을 1로 봤을 때, 저체중자의 사망률은 2.46, 정상 체중자는 1.73, 고도비만자는 1.39인 것으로 조사됐다니, 정말 희한하지 않은가. 그러면 오히려 그들에게 살을 빼라는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다이어트 말고도 성형이나 한국 최초의 '우주인', 광우병 공포, 조류 독감, 블로그 등등의 주제를 가지고 미디어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비판하며 봐야 하는지, 어떻게 '낯설게' 하여 관객의 입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 찬찬히 말해 주었다. 미디어에서 제공한 것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정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많은 미디어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는 '중우衆愚'가 될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단순히 보이는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바라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