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고~ 이런 슈퍼우먼의 엄마를 보면 현명하지도, 대단치도 않는 엄마들은 어쩌라구 싶을 정도로 10점 만점에 10점을 받는 주인공의 엄마가 있다. 이민 1세대로서 힘든 인생 속에서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낸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적으로 그런 엄마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남는다. 우리 엄마는 한국 토박이로 살면서 이민족이 겪는 어려움도 겪어본 적이 없고, 빵이 주식이 아니다보니 케이크나 쿠키, 미트볼 같은 음식에 솜씨를 발휘하지도 못하며, 아둥바둥 살면서 날씬한 처녀적 몸매에서 잘못된 산후조리 때문에 갑자기 불어난 체중과 빠글이 머리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아줌마의 모습으로 변신하셨기에 이 책의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의 엄마와는 도저히 연결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소설 속의 엄마는 무슨 잘못된 일이 있어도 조용조용 아이들을 깨우쳐가면서 성장시키는데 비해 경상도 토박이인 우리 엄마가 화가 나면은 우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푼다는 거다. 이렇게까지 쓰고 나니까 완전히 엄마 망신을 시키는 것 같지만 뭐, 우리 엄마만 그럴까 싶기도 하고 나이가 드니까 엄마의 그런 마음이 자연히 이해되는 게 있어서 거리낌없이 쓴다. 하지만 말이다. 놀라울만치 닮은 건 소설 속 엄마와 우리 엄마의 분위기다.

 

아이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은행에 통장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의 보물 브로치까지 파는 일도 서슴치 않으며, 아이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했을 때, 그러고도 모진 소리 - "넌 도둑이야" - 란 말을 들었을 때도 웃음으로 아이가 스스로에게 정죄를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달래 주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왠지 내 인생의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건 왜일까. 인간이 엄마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평생을 걸쳐서겠지만 - 어른이 된 후에도 부모가 이혼하면 심한 충격에 빠진다고들 한다 - 그 중 가장 민감했던 시기가 아마도 초등학교 때가 아닌가 한다. 사실 나는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는 남아있는 기억이 거의 없어서 잘 안나는데,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내 수줍음과 내 어린 마음을 많이 보호해주셨다는 생각이 들 만한 사건이 몇 있다. 천성이 수줍음이 많은 나는 무언가를 시킬 때 윽박지르기보단 살살 구슬려서 시키는 게 효과적인데, 엄마는 그걸 아셨다. 특히나 내가 지각을 해서 학교종이 울리는 것을 집에서 들으면 "오늘은 학교를 안 가고 싶다"고 어리광을 피운다. 실제로 어리광이 아니라 학교에서 혼날 게 무서워서 겁을 집어먹고 엄마의 눈치를 보는 것이지만. 그러면 엄마는 엄하게 "당연히 가는 거지~"하기보단 "옳지, 착하다. 어서 갔다 오렴." 하고 보내셨던 걸로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 중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는 없겠지만, 사랑하면서도 자식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해 은연중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는 정말 많을 것이다. 전에 봤던 [증오의 기술]에서는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서 부모가 상처를 주면 부모를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정죄하기도 한다는데, 그렇기에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특히나 자식이 잘못을 하고 왔을 때 말이다. 사실은 자기도 자기 잘못을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것에 대해 큰 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대고 비꼬는 말이라든가 부모가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순간적으로 내뱉어버린 말을 하면 아이는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잘못을 했으면 그 잘못에 대해서만 혼내야지, 다른 이유를 들어 그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 "너는 버릇없는 짓을 했어!" 와 "넌 버릇없는 아이야." 는 정말 다른 말이니까~ 우리 엄마도 내게 그런 구원을 많이 베푸셨다. 내가 집에 늦게 들어가면서 엄마한테 혼날 것을 각오하고 잔뜩 움츠리고 가면 의외로 엄마는 혼내지 않으셨다. 평소보다도 더 자상한 목소리로, "저녁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먹자~" 고 하셨었다. 그 때는 아빠도 언니도 동생이 있었던 것조차 생각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때의 엄마만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요즘에 엄마한테 그때 이야기를 하면 엄마도 얘가 미리 겁부터 먹고 있는데 혼낼 순 없었다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처럼 카트린('캐스린'의 노르웨이 말이다)의 엄마도 너무나 사랑스러우시다. 집안 친척들과의 불화도 해결해주시고,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모든 하숙생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시고, 노르웨이 이민자의 딸로서 카트린이 학교 아이들의 편견에 힘들어할 때도 짜~잔 하고 나타나셔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는 게 정말 만능해결사가 아닐까 싶다. 아이~ 보고 있으면 현실과 다른 엄마의 모습이 괜히 허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는 엄마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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