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 대공황 - 80년 전에도 이렇게 시작됐다
진 스마일리 지음, 유왕진 옮김 / 지상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경제가 워낙에 위기이다 보니까 나도 자연스레 이런 책을 손에 집어들게 된다니 정말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책은 1929년 초여름에서 1933년 1사분기 말까지 이어진 세계대공황이라고 하는 경제 위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당시의 대공황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에 따른 대책이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가 나왔지만 그것이 비전문가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워서 새로이 책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세계대공황을 접근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는지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예전에 알고 있었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세계대공황이 시장경제의 불안정성과 정부의 감시와 감독의 필요성을 증명해준다고 알려져 왔지만, 새롭게 나온 연구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정부에서 금본위제를 통제하고 지휘했던 노력 때문에 불황을 더 혹독하고 더 오래 지속되게 만들었던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란 화폐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유지하는 본위제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상승된 물가를 이전의 환율로 금본위제를 무리하게 맞추려고 했던 것이 물가와 통화량에 많은 무리를 주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유통된 통화량만큼 금이 많이 없는데, 그걸 무리하게 맞추려고 하다 보니 물가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고정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걸 보면 정말 미련하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쯤 되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특히나 영국은 자국의 물가하락이 우려되자 바로 포기했는데 말이다. 왜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무리하게 금본위제를 고수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정말 신기한 점이 또 있다. 내가 머리털 나고 물가 상승한 경우는 많이 봐왔지만 물가가 하락한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대공황 때는 그랬단다. 그런데 물가가 하락됨에도 불구하고 후버 대통령과 많은 기업인들이 약속을 해서 임금을 삭감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은 임금을 삭감했다면 경기 침체의 정도는 실제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작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임금이 계속 유지되어 상대가격을 왜곡시켰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긴축 목표를 방해했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지금은 물가가 상승됨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그대로이니 말이다^^;) 그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기업인들과 이론경제학자들이 고임금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고임금 정책에 따르면, 기업이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 피고용인은 생산된 물품과 용역을 구매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기업은 보다 더 '안정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거나 고용인을 해고하는 등의 방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임금삭감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통화를 금 태환을 요구하자 금본위제를 포기하지 않은 미국이 긴축통화 정책으로 경제 불황을 가속시켰던 것이다. 그 때 빠져나간 금만 해도 7억 2,500만 달러나 되고, 1931년 14~15%이었던 실업률이 1932년 6월에는 26%까지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이 되고 나선 그것이 좀 변했다.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달러를 평가절하했던 것이다.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자, 미국으로 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나 독일에 나치 정당이 득세해가자 불안해진 유럽에서 많이 금이 유입이 되었단다. 이것까지만 해도 점차적으로 회복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33년 3월과 7월 사이에 내구재 생산량이 35% 증가하고 실업률은 3월에 28.3%이었던 게 7월에 23.3%으로 줄어들었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그 외 다른 정책으로 문제가 생겼다. 모순된 뉴딜 정책 중 가장 압권인 것은 국가산업부흥법(NRA)였다. 그 법에는 같은 제품의 가격을 균등하게 하거나 생산량을 맞추고 미성년자의 노동을 금지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주당 40시간 근무시간을 규정했던 게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시행해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노동시간은 줄어드는데 물가상승은 계속 되니 어찌 사노~ 게다가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대기업은 문제가 없지만 소규모 기업들은 가격을 균등하거나 생산량을 같게 하면 대기업보다 경쟁력이 떨어져서 울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문제는 NRA의 규정을 시행하지 않아도 사법처리를 받지 않아 강제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NRA는 위헌 판결을 받고 사문화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까 서서히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 물론 그것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지만 말이다.
그 이후의 미국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점차 복지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독점금지법이 새로이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개인소득세 누진세율이 만들어지고, NRA의 조항 중의 하나였던 미성년자의 노동 금지, 최저임금제, 주당 40시간 근무를 강제화하고, 전 기업체에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일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 중 가장 백미는 실업보험, 노령보험, 장애자보험을 아우르는 사회보장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서서히 회복되어 가던 경기가 1937~1938년 사이에 다시금 불황이 생겼다. 불황 속의 불황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일어났는데 하나는 연방준비제도의 과도한 조치와 노동조합 결성 추진 기간 중의 급격한 임금인상가 노동비용의 상승이다. 연방은행이 은행들에게 지급준비율을 늘려주기 위해서 시도한 행위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켰고,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이 상승되고, 사회보장세금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경제는, 그리고 세계대공황은 우리가 단순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을 단순한 정책 하나만을 가지고는 설명하기란 어려운 것이니까. 특히 후버 대통령 때의 고정환율과 금본위제는 정말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끼쳤고, 루스벨트 대통령 때의 NRA도 영 아니였다. NRA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산량과 가격을 다 결정해주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그러니 이렇게 경제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에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경제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동적인 것이여서 완벽하게 해답을 제시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정책입안자들이 현명하게 결정하는 수 밖에는 없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