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아지즈 네신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인연은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머리가 무지 큰 당나귀 두 마리가 우스꽝스러우나 귀여운 모습으로 한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심상찮은 제목이, 그리고 얇은 두께가 내 마음을 끌었다. 읽어보니까 단순한 우화 속에서 진리를 전달해주는 게 참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거나 제 일만 잘하면 세상이 훨씬 살기 좋겠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나 정말 새로우면서도 감격적인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곰곰히 훑어본 작가 소개란을 보니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에이~ 일본만 이렇게 좋은 글을 쓰나 하는 질투심과 함께, 작가가 사실은 터키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터키, 그 나라는 내게 막연히 2002 한일 월드컵 때 알게 된 우리에게 우호적인 나라라고만 알고 있었다. 우리랑 많이 비슷하다는 터키의 이야기를 듣고 응, 그으~래? 했었던 게 다다. 그런데 이렇게 터키 작가를 처음 알게 되니 무지 생소하고 행복했다. 터키인들의 감성과 우리의 감성이 비슷하다고 하더니만 정말 그의 글은 내 심금을 울렸다. 심봤다아~~

 

그의 본명은 메흐멧 누스렛으로, 1915년 터기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고 터키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풍자 문학의 거장이자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라고 한다. 계엄령 하에서도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글로써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 그는, 그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갇히게 된 우리나라의 신영복 선생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책에 열광하다가 잔뜩 사두고는 꼬꼼 시들해진 터라 자세히는 언급하지 못하지만,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 따스함, 의지, 사랑 등이 아지즈 네신의 글에서도 느껴진 듯 했다. 내가 확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책을 읽어본 것이 겨우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언급한 [제이넵의 비밀편지], [생사불명 야샤르],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란 책도 한 번씩 펴들어봐야겠다. 그럼 아마도 새로운 좋은 작가를 알게 된 것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책 뒷날개에 소개된 [개가 남긴 한 마디]는 풍자우화집이라 내 입맛에 딱 맞을 것 같아 가장 우선적으로 봐야지~~~ 요즘 도서관을 다니고 있는데, 요즘 내가 찾는 책은 하나도 없어서 너무 실망이다. 이 책도 없으면 바로 신청해버리겠어!!

 

우리의 신영복 선생처럼 아지즈 네신도 계엄령 하에서 2쪽짜리 팸플릿을 인쇄하다가 갑자기 잡혀가 수감되고 유배를 당하였다. 그 때가 제2차 세계대전 말, 트루먼 독트린으로 터키를 원조해준다는 미명 하에 착취를 하는 미국은 이 나라에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 팸플릿이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라 그가 평소에 <마르코파샤>라는 신문에 싣는 글 때문에 윗사람들에겐 이미 오래 전부터 눈엣가시였던 거였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어떤 예비역 장교가 와서 은밀히 정보를 주고 갔는데 미처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 때 다른 나라로 망명이라도 했다면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긴 유배지에서 4개월 동안 지내는 여비도 없어 매일 굶다시피하고 살았는데, 그런 그에게 다른 나라로 망명할 돈은 또 어디 있었겠어~ 그리고 그가 그렇게 조국을 떠났다면 그의 글은 더 이상 살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나 터키인들이 그를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도 사람은 살고는 봐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평범한 나로서는 외부의 압력에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사람들의 정신구조가 신기하지만 아마 그래서 위인과 범인이 나뉘는 게 아닐까.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위인이 될 소질은 없으니... 불행하게도~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강원룡 목사의 [30년 전의 그 날]이란 수필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학생 운동과 농촌 운동을 하다가 감옥 생활을 체험한 그는, 이후에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생각하며 이겨냈다고 했다. 감옥 안에서의 많은 회유와 협박 속에서 자기가 믿는 신을 버려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추방당한 신의 모습이 보이면서 그는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그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다짐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그 기도문이 어찌나 가슴 절절한지 모른다.

"제가 이 감방에서 죽게 된다면 육체는 죽어도 영혼만은 더럽히지 않게 해 주시고,

만일 살아 남게 된다면 육체는 감방에서 죽어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제 심신을 당신의 제단에 오롯이 바친 제물로서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지즈 네신이 어떠한 신에게 자신을 내어놓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도 이 목사처럼 자신의 육신을 도모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것은 같지 않을까. 이렇게 자신의 신념을 위해 고통을 참는 그런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자로서 안타까우니까 그래도 좀 굽히지 하는 맘도 없진 않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은 유배 생활이 전부다. 유배를 왔다는 게 알려지면서 어디를 가도 그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옛 친구조차 그를 반기지 않았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 지원금도 안 나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혹독한 겨울 날씨에도 난로를 때우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를 이렇게 비참하게 했던 옛 친구, 자신을 모른 척했던 주민들, 자신을 조롱했던 학생들, 부당하게 유배를 보낸 정부까지도 어느 하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그 때는 그런 상황이었을 뿐이라고, 다들 어쩔 수 없었던 것 뿐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자신을 끝까지 외면했던 옛친구도 아주 나중에는 서로 친구로 지내기까지 한다. 이 어찌,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서문에서 그가 말한 단 세 마디가 내 가슴을 울린다.

 

생각하고, 사랑하고, 웃는 것. 삶의 진실이란 이것이 전부가 아닐까요?

인간에게 있어 이것 이외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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