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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채윤 지음 / 러브레터 / 2009년 2월
평점 :
사람이 한없이 좋은 한 남자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동생의 회사에 전무로 옮겨가면서 실패를 거듭하곤 가출한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 같진 않다. 김정현 작가의 아주 유명한 [아버지]란 소설을 아직 보진 않았지만 그의 다른 소설 [고향사진관]을 봤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아버지상 같지 않은 게 이 소설의 주인공에겐 40대 후반의 남자에게 기대할 수 없는 감수성과 문화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아버지상은 당신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고, 부모를 위해 참아가는 그런 '도리'에 바른 모습이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아버지는 자신이 그런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자각이 들자,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도망치고 회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 자식들 뒷바라지하려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한 채 그저 목숨만 연명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끔찍하다. 그건 자식들의 눈에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인 이기심을 채우지 않아야만 자식들을 제대로 부양할 수 있었던 과거의 우리 아버지들의 삶과는 이젠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그런 아버지에게 한없는 희생을 감수하게 만들고 영위해온 자식들이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 그 또한 자식들에게 한없는 희생을 내어준다는 게 가능하겠느냐 말이다.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자신이 커왔으면서도, 눈물겨운 희생을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나 알 수 있었을까. 그네들의 마음 속엔 이미 희생이라는 덕목은 사라진지 오래라 자식에게조차 희생을 베풀어주지 못하지는 않을까 싶다. 그런 남자들에게 무턱대고 대단한 아버지, 능력있는 남편, 강한 남자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뛰어난 감수성으로 아내를 감동시켜 결혼까지 이어왔지만 그런 감수성은 회사를 운영하고 부도를 막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딸과 아들에게 음악회나 미술관 등을 구경시켜주면서 예술을 즐기는 법을 알려준 사려깊은 예술적 통찰력은 생수통을 나를 때도, 생수 사업을 하는데 속아서 돈 삼천만원을 날릴 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능력이다. 변화한 이 세상에 맞게 감수성과 예술적 감각으로 무장한 남자이지만 돈이라는 권력에 눌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국어 선생님이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사업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만 갖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중년이 된 지금에서도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고 생각하는 그의 감수성은 원체부터 사업과는 상극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그렇게도 모르고서 일을 시작하다니~ 화려하진 않아도 묵묵히 선생님으로 남아있었다면 그에겐 더 나았을 것을~~
많은 사업의 실패로 대화까지 단절된 아내에게 평소와 같이 일기장에 연애편지를 쓰면서 돌연 아내가 자기에게 아무런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이 얼마나 소심하고 겁쟁이인 모습인지~ 자신의 무능력한 모습에 분노하고 부끄러워할지언정 가출까지 결심하고 실행하다니, 이것 참 질풍노도의 시기와 다를 바가 없구만. 그래도 이런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정이 가는 건,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일 게다. 거대한 산 같은 아버지라는 존재도 우리와 같이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버럭버럭 엄마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 속에서 부끄러움과 당황을 읽어낼 수도 있고, 잔소리 한 마디 더 하는 게 사실은 우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내 주위에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닫혀있어서 불만이 쌓인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아버지가 너무 권위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권위가 당신들도 만들고 싶어서 만든 권위는 아닐 터. 그저 갑자기 커버린 자식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일 수 있으니, 이젠 그 벽을 허물 때가 되었다.
아버지의 연애편지를 발견한 승희와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간다. 그렇지, 한 가족이라는 건 누가 힘들 때 보듬어주고 살펴주는 것일 테니까. 냉담을 가장한 채 그의 본모습을 묵인해준 것이 상대방에게는 경멸로도 느껴질 수 있는 건, 그건 바로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조차도 서로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그 절절한 사랑을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중년인 나이에도 아내에게 뜨거운 사랑으로 편지를 써왔던 것을 아내가 알지 못했다면 아내는 그의 마음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사랑은, 그러니까, 대화인 듯 하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사랑한다면 당연히 대화도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항적인 십대를 둔 부모도, 연세가 지긋한 부모를 둔 자녀도 사랑하는 가족과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