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 - 변화와 희망의 퍼스트 레이디
엘리자베스 라이트풋 지음, 박수연 외 옮김 / 부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2008년 11월 4일에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실시되었다. 결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8.4~)!!!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뒤를 이은 명 연설가로 유명한 버락은 '변화'와 '희망'을 내세워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인터넷을 이용해 소액기부를 받았으며 그중에는 최초 기부자가 상당히 많았단 것이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을 감동시켜 유권자들이 흡사 록가수를 따라다니는 소녀팬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기현상도 연출하기도 했다. 선거 당일, 저자는 길게 늘어선 투표장의 모습을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봐야 했다며 정말 미국에 희망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미셸의 말처럼 "진정 미국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대단한 신화를 이룩한 버락 오바마의 나머지 반쪽, 평생을 사랑할 단 하나의 여인인 미셸을 보고자 한다. 그녀가 단순히 운이 좋은 퍼스트 레이디일까. 아니면 자신이 변화와 희망을 이끈 주역일까.

 

인종 차별이 심했던 시카고 남부 출신인 미셸 로빈슨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미셀의 어머니 매리언 여사는 항상 미셸에게, "선생님은 마땅히 존경해야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 며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격려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낼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미셸은 자신만만하고 항상 이기려드는 승부사 기질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시카고 남부의 인종 차별은 흑인들에게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게 했을 정도라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두 아이를 자신감있게 행복하게 키워낸 그들의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특히 미셸의 아버지 프레이저 로빈슨은 다발성 경화증이란 진단을 받으면서도 매일 성실하게 일을 해냈던 듬직한 가장이었다. 안방과 거실, 화장실로 구성된 작은 집에서 거실을 할애해서 오빠 크레이그와 미셸의 방과 공부방으로 나누어 주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교육을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가풍을 만들어갔다. 실제로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뿐이었고, 그 외는 독서나 운동, 공부, 봉사로 시간을 채우도록 격려했다고 한다. 역시 위대한 사람의 뒤에는 그런 부모가 있다는 진리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그녀가 천재적인 머리와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에 프린스턴 입학하게 된 오빠를 따라서 프린스턴에 입학하게 된다. 그 학교는 다양성을 중시한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흑인에게 학위를 수여한 지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라 은밀한 차별이 있었다고 한다. 백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기숙사, 클럽 등에서 아예 처음부터 격리를 시켰다고 하니, 알만하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같은 수업에 들었던 백인 학생이 미셸을 전혀 기억못할 정도라고나 할까. 반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녀였음에도 말이다. 그런 시기를 지내고 나서 하버드 법대를 들어가 시들리 & 오스틴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명문대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흑인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명문대에 있으면서 시야가 좁아져 주류 엘리트 백인들처럼 돈을 보고 법률사무소에 들어간 것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 즐겁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인턴으로 들어온 하버드 법대생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가 바로 버락 오바마. 3년간 지역사회 운동가로 있다가 하버드에 들어간 버락은 그녀보다 3살 연상이지만 아직 학생이었다. 처음에 데이트 신청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았던 미셸은 그가 초대한 지역사회 운동가로 일하던 시카고 남부의 교회에서 그의 연설을 듣고 뿅~하고 반해버렸다. 바로 그가 연설했던 이상은 바로 그녀의 이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장거리 연애를 계속하다가 디저트 접시에 놓인 반지를 받고 청혼을 수락했다고~~~

 

잘 나가던 법률회사를 그만두고 사회봉사직을 택하게 된 미셸은 거기서 최고의 조언자를 만나게 된다. 당시 데일리 시장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밸러리 재럿을 만나 그녀와 뜻을 같이 하며 과감하게 고액의 연봉직을 버렸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는 버락과의 뜻과도 같은 길이었다. 버락이 대통령 공약 중의 하나로 봉사를 늘리겠단 계획을 발표하고 많은 사람들이 버락의 뜻과 함께 할 때는 정말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단 희망이 보였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되어야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점점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버락은 공인이고 미셸은 공인의 아내로서 앞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가정에 소홀히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히 미셸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는가. 특히 버락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선거유세를 치를 때, 자기의 일을 가지고 있던 미셸이 엄마로서, 그리고 전문인으로서 많은 것을 희생했던 것!! 그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버락이 깨달곤 맞벌이 가정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모든 변화와 희망의 중심은 가정이기에, 미셸 자신이 엄마와 친구에게서 받았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줄 거라니, 정말 세상이 바르게 될 가능성이 보이는 것도 같다. 영부인으로서 미셸에게 어떤 일을 할 거라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셸은 한결같이 두 딸을 잘 키우겠다고 대답한 걸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 그러니까 미국의 수많은 아이들, 전 세계의 수 많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음가짐과 그런 세계를 만들어간다면 그들이 내세웠던 '변화'와 '희망'의 슬로건은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셸은 명연설로도 유명한데, 그녀의 연설 한토막을 인용하고 싶다.

 

"밤마다 아이들을 잠자리에 누일 때면 언젠가 이 아이들도 자기 가정을 꾸릴 것이고,

언젠가 이 아이들이 - 그리고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

자기 아이들에게 우리가 이번 대선에서 이룬 업적을 들려주게 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우리가 이 위대한 나라

- 시카고 남부 지방에서 자란 소녀가 대학을 나와 로스쿨에 들어가고,

하와이에서 편모 아래 자란 소년이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나라 - 에서

세상을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으로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