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표지는 완전히 우리 옛날 사진관처럼 허름하고 찌그덩 소리가 날 듯한 풍경이다. 바로 우리 네 마음 속에 있는 고향사진관...

이런 사진관이 표지와 제목으로 나왔으면 뭔가 사연이 있음직하겠지?

그것은 바로 주인공 용준이네 아버지가 하시는 사진관이 이 고향사진관이다. 그런데...

용준이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그 가업을 갓 군대 제대한 용준이가 맡아하게 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정말 부럽다, 직장 구하지 않아도 되니 속편하겠네~ 등등 다양한 사심들이 나올 수 있지만,

여기 있는 우리의 서. 용. 준. 을 이해하려면 여기서부터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왜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용준이에게 짐이 되었는지....

왜 그런 답답함이 용준이를 힘들게 했는지....

고향사진관 외에 가지고 있던 예식장도 운영해야 했는데 일 끝나면 바로 친구들이랑 술만 쳐먹고 다니는,

정말 속 편한 놈이란 소리를 들든 말든 그의 속은 왜 문들어졌는지...

바로 그것을 알아야지, 이 이야기가 더 쉽게 와닿을 것이다.

 

달성 서 씨 집안에 장남, 서용준은,

위로는 누나 둘, 아래로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를 둔 가장이 되었다. 스물 셋넷이 됐을까 말까하는 나이였다. 

그가 가장이 된 때는... 그리고 그의 집에선 아직 아무도 혼사를 치르지 않은 때였다. 생계를 꾸려갈 사람이 필요했다.

복학도 하지 못하고 바로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모든 것을 묵묵히 잘 이루어냈다.

예식장도, 아버지 수발 드는 것도, 누이들 혼사도, 모든 것을... 마치 아버지처럼...책임감있게...

대학에 큰 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큰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허나.....

군대를 제대하고 이제 무언가 이루어보자!! 하며 꿈을 펼치려 마음을 먹었던 때였다.

고등학교 때 수재 소리를 들어가며 학교 다녔던 사람이었다.

가능성도 있고, 할 능력도 있다는 소릴 들으면서 컸던 사람이었다.

혹여 가능성도 없고, 능력도 없더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직장 구하지 않아서 좋겠다고 농을 칠 때, 빚 대신 유산을 받은 넌 복이 많은 거라고 위로해줄 때....

용준인 월급 봉투 받아보길 소원했다. 그것은 단순히 월급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였을 거다.

아직은 아들로 있고 싶다는 마음...아직은 꿈을 꾸어보고 싶다는 마음...

가족이나 가업이 짐스러워서가 아니라 아직은 훨훨 날아 세상을 휘저어보고 싶은 그 작은 소망조차도,

용준이는 빼앗겼다. 스물 서넷 될 즈음에...

 

그렇게 청춘이 다 가고 누나들, 동생들 다 시집장가 보내고 났을 때조차도

아직도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도 장가를 가야 했다. 가업을 잇고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한번도 사랑을 해보지 못한 인생이었다. 이제 청춘도 다 가고 서른을 넘긴 즈음에 소개로 만난 여자였다.

미안했다. 그 여자에게... 자신이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자신이 사랑을 주지 못할 수도 있어서...미안했다.

자기에게 시집을 오면 그저 줄 수 있는 것은 답답할 정도의 의무, 그것 단 하나 밖에 없으니...

허나, 한 가지는 다짐했다. 절대로 한 눈은 팔지 않겠다고, 그것이 사랑이든, 정이든, 의무이든, 책임감이든...

오로지 그녀 한 사람만을 바라보겠다고 말이다.

 

그녀....희순.....

약속을 약속이란 말을 넣지 않고서도 하는 그를 보며, 어딘가 모르게 믿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천성이 내성적이고 나가는 걸 싫어하는 그녀인지라 그가 제공할 수 없는 오락엔 관심이 없었다. 

두 번째 만남에 결혼하기로 하고 그냥 담담히 식장으로 들어가는 그는, 정말 자괴감 밖엔 없었다.

사랑이 없이 결혼하는 게 원통하고 한스러운 게 아니라,

오로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이런 커플 보신 적이 있으신지....

<이별을 잃다>는 남자와 여자 간의 사랑이야기이지만, 이것처럼 잔잔하고 서로를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별을 잃다>가 얼마나 생각났는지 모른다. 정말, 멋진 커플이었다.

 

나이 들어 아이를 낳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게 점차 늘어가면서

아버지가 그런 마음으로 자신들을 키우셨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지금껏 살아온 것도 아버지께서 키워주시고 있다는 것도 알아간다.

그러면서 나이 중년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의식이 없는 아버지이지만 자신이 많이 의지했었음을 깨달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아버지란 존재가 아닐까. 사실은 살아만줘도 고마운 존재가 아버지란 거.

능력이 없어서 제대로 받쳐주지도 못하고, 다른 집 아버지랑 비교하며 우리 아버지를 탓하게도 되지만,

사실은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 아닐까 한다.

물론 나도 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이 없는 존재로 등장하는 아버지이지만,

소설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존재감을 가진 아. 버. 지.

그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아버지가 희생한 것은 과연....무얼지...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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