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난 시를 모른다. 사실 시를 보면 어렵다고 도망가는 편이다.

그런데 박경리 님의 유고시집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왜 그리 탐이 났는지 모르겠다.

못 오르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옛말도 있다지만, 난 자주 쳐다보면 나중엔 그 나무가 되리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어김없이 못 오르는 시를 들여다 보고 있다.

하나 더... 시를 들여다 보면서 느낀 건 어쩌면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다.

내 비록 감수성이 그리 예민하진 않더라도,

새벽녘이 가까워오는 밤 마음이 답답해서 내 말 들어주는 이 하나 없어서

잠을 못 이뤄던 기억이 있기에 그런 기나긴 밤을 글로 옮겨보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하염없이 쏟아지는 잠이 내 그런 사념들을 막아내고 있긴 하지만...

 

고민이 있을 때...

잠 못 드는 밤이 계속 될 때...

이야기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이 하나 없을 때...

외로울 때...

기가 막힐 때...

심난할 때...

사는 게 거지 같을 때...

뭐... 이럴 때 글을 끄적이다보면 발표만 안 한달 뿐이지, 시인이 뭐 별건가 싶기도...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끄적이는 게 서평이라고 내놓는데, 시도 그렇게 시작하면 될 것 같기도 한다.

시를 전문적으로 쓰시는 분들이 보시면 뭐라고 하시겠지만

난 뭐, 문학적 감수성도, 세상을 품을 커다란 마음도, 신념도 없는

그저 시의 소비자일 뿐이니...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게다.

 

박경리 님의 시는 그렇게 내게 편하게 다가왔다. 어느 누구도 그의 시를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는 않으니...

이렇게 편하게도 쓸 수 있구나 새삼 시가 새롭게도 보인다.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서정주, 김소월, 유치환, 신석정, 신석정, 조지훈, 박목월, 김영랑, 김춘수, 김수영, 신동엽, 김광섭, 신경림....  

뭐, 이런 분들의 시를 읽다보면 왠지 위대한 시대적 사명에 대해서만 노래해야 할 것만 같은 벽이 있었는데...

꽤 가까운 동시대를 겪은 凡人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박경리 님의 시는 그렇게 편안했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는 창피한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사실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배경지식을 가지고 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더 순수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뭐,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이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이 시집의 제목으로 따온 <옛날의 그 집>은 내게 그리 감동을 주진 못했다.

비록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란 한 어구는 너무 아련하고, 한스럽고, 감동스럽지만...

내게 울림을 준 시는 따로 있다. <우주 만상 속의 당신>(p. 42)... 난 요 부분이 너무 좋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갔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시의 마지막 부분인데... 갔어야 했지만 아직은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부분이 삶에 대한 애착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직 놔주지 않는 인생을 탓할 수도 있겠다만... 뭐, 그건 읽는 사람의 자유니...나도 내 마음대로 읽고 있다. 아주 멋지지 않는지...

왜 좋냐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으니.. 묻지는 말기를...

 

덧붙여서, 좋은 시도 아주 많지만, 좋은 그림도 많아서 하나 소개해본다.

그림을 나무판에 그리는 걸로 유명한 화백 김덕용 님의 새 그림(p. 109)이다. 같이 있는 시는 <연민>(p. 108)...

무엇으로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참새 두 마리는 <연민>이라는 시와 함께 잘 어우러지며

내게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시의 내용을 보면 참새가 아닌 듯도 싶지만 뭐, 난 참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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