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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ㅣ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평점 :
이철수 님의 판화집이 있다는 것은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란 판화산문집을 통해서만 알게 되었다.
그것도 작년 쯤에 겨우 알게 된 거라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그 책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아주 잠깐 실렸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보고 나서 완전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렇게 엽서모음집이 있다는 것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헉~이런 내 무지가 괴롭다.
인상깊고 은은한 그림과 여백과 글씨를 보면 정말 누구나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엽서를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정말 감격 그 자체다!!
여백의 미가 은근 풍기는 엽서는 왠지 간단한 내용만 있을거라 생각하기가 쉽지만 이 엽서는 절대 그렇지가 않다. 정말로.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뭣하지만 은근히 감겨들어가는 그 그림에 처음 빠지다가...
독특하면서도 개성넘치는 글씨를 읽으면 두번 빠지게 된다. 그 내용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더 무섭게 비판하는 내용을 보고있노라면 뭉쳐있는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했다.
특히, 운하이야기나 촛불시위이야기를 보면 말이다.
어둠과 한몸이 된 야행성 짐승은 제 눈빛보다 더 밝은 빛을 무서워하지요.
밤에 켜든 촛불이 제일 무서울 겁니다.
하나 둘도 아닌 수만 수십만의 밝은 눈빛이, 어둠 속에서 살아움직이고 있으니!(p. 83)
폭력은 언어가 아니다!
위기다!
권력의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다.
시위가 변질되었다고? 무슨 그런 망발의 말씀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꽃피는 봄에 시작해서 성하의 더위에 이르도록 민심을 보여주었는데,
거짓말로 일관하는 매국, 매판의 권력에게, 더, 무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인지?
역사의 후진을 꿈꾸는 어리석은 야행성 짐승들!(p. 88)
처음에는 가슴이 벌렁거렸더랬다. 이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과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허나, 다시 생각해보니 예술은 현실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곧 예술의 소재니...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육사의 시만 봐도 절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지 않았던가.
일제시대에 조국 해방을 강렬히 외쳤던 시를 보고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오히려 직설적으로 말하는 신문 사설, 칼럼보다도 그 비판의 여운이 오래가는 걸 보니 이게 바로 예술의 할 일이구나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암울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순서대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감미로운 엽서들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그런데 목차 제목으로 붙인 이름도 어찌나 시 같은지... '그림으로 시를 쓴다'는 이철수 님에 대한 찬사가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눈빛 든 마루에 앉아]
[고마운 봄비 오시네]
[초록들이 신명나게 자라네요]
[가을 빛에 눈 멀면 마음 열릴까]
농사꾼이 농사를 지은 일도 있고, 집에 있는 화장실에서 똥을 펐던 이야기, 슬리퍼 차림으로 설악산에 훌쩍 다녀왔던 이야기들을 보면서
가식적이지 않고 진심으로 살려고 하는 시인의 모습도 볼 수가 있었고,
세탁기에 넣고 돌려 못쓸 뻔한 핸드폰을 말하면서 낭비가 미덕이 된 세태에 대한 감상도 볼 수가 있었다.
한 구절을 따와보면,
고작 3년여 만에 '구형'취급을 받게 된 핸드폰을 앞에 두고,
오십년 넘게 쓰고 있는 몸뚱이를 생각합니다.
생각이며 시력이며 낡아가는 처지를 생각하면 파렴치하게 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p. 122)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낭비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참 시인의 생각이 놀랍기도 하다.
내가 낭비가 심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동적인 선택으로 지금은 쓰지 않고 있는 옷가지며, 가방이며 하는 물건을 볼 땐,
조금은 뒤가 켕기기도 한 것은 아마도 잘 하고 있지 못한 내 모습 때문이겠지.
더 이상 욕심만 앞세우고 충동적으로 소비를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요즘 내 충동구매의 대상은 책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싶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 시인의 자연적인 삶을 조금은 따와서 살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