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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홍규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올랜도]라고 하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시절 <연극과 영화> 수업의 과제물로서였다. 수업 제목이 <연극과 영화>였기에 [올랜도]라는 영화를 보고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과제물이었다. 그전까지는 '올랜도'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터라 그가 책의 주인공이자 책 이름이었는지, 그리고 페미스트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가 지었는지도 까맣게 모른 채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비디오를 빌려 보았다. 영화에서 나온 '올랜도'는 독특한 취미를 지닌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이 되면서 그나마 남아있었던 그의 위엄이 여자으로서 꼭 지켜야 할,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눈짓이나 관습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교계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래서 나는 그 비디오의 내용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로서는 약간 관습에 어긋난 행동을 해도 그 영광이 그대로 남는데 여자로서는 그의 인간성, 지성, 재치보다는 단순히 관습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다니...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올랜도'는.
그런데 그 비디오가 대단히 유명한, 그러나 내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라는 것은 이렇게 새롭게 포장된 책이 나오는 이제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아마 그 비디오를 봤을 때 거의 6년 전이니 이 얼마나 무식한지... 너무 유명해서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은 거의 읽지 않았기에, 내 무식이야 어차피 만천하에 드러난 거니까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마는, 그래도 과제를 다 하기 전에 그것에 대해 사전 지식을 찾아놓지 못하고 과제를 해간 것은 좀 부끄럽다. 어쨌거나 나와의 인연이 그나마 조금 있는 책, [올랜도]를 이제야 처음 보았다.
나처럼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16세기 사람인 '올랜도'공작은 수려한 미소년인 용모에 아름다운 다리를 가지고 있는, 사색과 문학을 좋아하는 약간 별종인 귀족이었다. 그러던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아 궁정일도 했다가 보물섬 뒤에서 음녀와 뒹굴어도 봤다가 러시아 공주와 사랑에 빠졌으나 실연을 당하기도 했다가 하는 등 남자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을 만큼 호탕하고 호방한 인생을 살아왔다. 게다가 터키 지역에서 대사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뭇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그가 홀연히 여성으로 바뀌어버렸다. 남자로서 살 만큼 다 살았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집시 여인과 혼인한 증서만 남기고 여성이 되어 버렸다. 과연.. 아무런 생각없이 비디오를 본 내가 얼마나 황당했을지... 상상이 가겠는지...
여성이 된 다음 성별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터키식 바지를 입고 얼마간 집시들과 생활하다가 배를 타고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름다운 여성이 된 채로 말이다. 선장이 차양을 갖다 준다거나 고기를 얇게 썰어준다고 제의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여성임을 자각하게 된 '올랜도'는, 여성으로서 호의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깨달으며, 자신을 버린 러시아 공주 샤샤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했다. 시골의 저택에 간 '올랜도'는 대공의 구애를 받기도 하고, 사교계의 휘황찬란함을 즐기기도 했지만 어느덧 그것의 무의미함을 깨닫고는 에디슨이나 포프, 스위프트 등 18세기 여러 작가들과 교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들과의 교제도 '올랜도'가 여성이기에 작가들이 의견을 물어는 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재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엔 어색했던 여성이 이젠 완전히 익숙해져서 남성의 약점, 여성의 약점 모두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양성에 대해 모두 비꼬고 있는 건가?
19세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 그게 결혼식 장면인지 정말 몰랐다. 갑자기 무릎을 꿇으라더니 바로 결혼했다 --; - 자신의 시를 인쇄소에 맡기러 도시에 나왔다가 16세기에 '올랜도'가 아직 남성이었을 때 그를 조롱했던 작가, 니콜라스를 만나 바로 시를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러곤 7쇄까지 찍은 유명한 시인이 된 1928년으로 이동해버렸다. 그러니까 1588년에서 1928년이라는 약 300년 간의 시간 여행을 '올랜도'와 같이 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사색을 하고 끊임없이 가만히 있지 않는 인물이 '올랜도'이긴 하지만 그의 하녀들이나 집사, 니콜라스만 하더라도 같이 300년을 지나온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도 이상했고, '올랜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도 너무 어색해서 내용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결론은 내가 보기엔... 남성도 어리석고, 여성도 어리석다는 것은 아닌지. '올랜도'가 끊임없이 외쳤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소소한 규율이나 관습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하는 여성들이나 허영에 가득차 제멋대로 행동하는 남성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살아간 '올랜도'를 통해 알려준 것은 아닌지. 사실 끊임없이 이어진 '의식의 흐름' 기법은 안 그래도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찬 그녀의 작품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였다. 의식은 말그대로 확고한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읽어도 내가 읽고 있는지 자고 있는지 모호한 상태가 계속되어서 몇 번이나 다시 고쳐 읽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이름난 책을 읽어라도 봤다는 점에서 만족한 소설이다. 아~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