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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평점 :
철학을 좋아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철학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나름 이상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는, 철학을 아주 좋아한다. 내가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남에게 뭔가 있어보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나름 심오한 학문의 세계에서 아둥바둥하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책을 자주 읽게 되면서부터 철학책은 꾸준히 내 손에 들려있었다. 고등학교 때 윤리 과목으로 한 번 데인 적이 있어, 동양철학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지만 - 모호하게 정리되어 있는 게 어렵기는 아주 드럽게 어렵다!! ^^; -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이해하기도 쉽고, 내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파악하기에도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서양 철학은 너무 사랑한다. 그런 서양 철학자 또는 계몽사상가의 이름만 하나 들을라치면 꼭 나도 18세기 프랑스의 어느 카페에서 같이 토론하고 있는 것같은 환상에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거의 내 우상이다. ㅋㅋ
그만치 철학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철학을 완벽히 이해했다곤 말할 수 없다. 뒤에도 말하겠지만, 이 책은 너무 진도가 안나가서 진땀을 흘린 축에 속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철학책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절대 쉽다고는 할 수가 없어서 읽으면서 조금 좌절감을 느껴더랬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의지의 한국인이 아닌가. 보통 안 읽히면 읽다가 포기하기가 일쑤인데, 이 책만큼은 매일같이 손에서 놓은 적이 없이 한 쪽이라도 꾸준히 읽어 마침내 끝까지 다 일어냈다는 거다. 사실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던 철학책이 몇 권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상당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ㅋㅋㅋ
먼저 이 책에는 다른 철학책과는 다른 특이점이 몇 가지 있다. 철학책하면 보통 고대부터 중세, 근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간적인 흐름에 맞게 내용이 배열되어 있는 반면에, 이 책은 거꾸로 간다. 아니, 이게 바른 것이 아닐까 하는데, 바로 우리가 살아 숨쉬는 지금, 현대의 철학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근세, 중세, 고대 순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더 어려웠었던 건지도 모른다. 난 고대 철학자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바로 그것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에서 태어났던 철학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국가로 확실히 구분지어졌다기 보다는 도시로 구분지어진 경우가 많아서 지금과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그래서 그 사조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도시로 국한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전체 유럽지도에 각각 그 나라의 지도까지 삽입해놓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 때문에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고 이해도 잘 되었다. 사실 에든버러라고 하면 그게 어느 나라에 붙어있는지 내가 알게 뭐냐~ 그런데 여기선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백지설을 에든버러란 도시를 들어 아주 맛깔나게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서 간단히 목차를 보자.
PART 1 현대 철학 지도 새로 그리기_(서양 현대 철학) - 이 세상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없다 비엔나
- 철학의 새 천년, 1968년에 시작하다 파리
-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실재의 귀환
PART 2 근대적 세계관을 출발점을 찾아서_(서양 근대 철학1) -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피렌체
- 이성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빛이다 암스테르담
- 하얀 백지에 인간 사회를 그리다 에든버러
딱 한 눈에 봐도 무슨 내용이 나올지 알겠지 않나? 내가 체계적인 것을 워낙 좋아한지라 이렇게 나와 있으면 아예 사족을 못쓴다. 헤~
보면 볼수록 뿌듯할 뿐이다. 그런데 저기 [실재의 귀환]은 장난아니다. 정말 어렵다. 내가 '실재'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표상주의로 대변되는 로티와 신의 관점을 들어 이 세상을 거울처럼 드러낼 수는 없다고 한 퍼트남의 사조는 아직까지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난 현대 철학은 쥐약인 것 같다. 사실 많이 접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근대 철학으로 오면서 르네상스를 경험하며,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원근법에 대해 읽으니 한결 쉬웠다. 원근법이란 단어를 알고 있으니까 아무런 걸리는 게 없이 다 이해가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야기는 예술이었다. 역시 천재는 멋있어~ 그런데 '원근법'이란 단어가 단순히 회화의 기법만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예전엔 몰랐던 사실이었다. '원근법'은 어원 자체가 '시각' 또는 '전망'을 뜻하는 '퍼스펙티브(perspective)'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폭넓은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란다. 건축에서 '투시도'라고 부르는 것처럼. 점점 고대로 진입하는 과정을 읽으니 재미도 있고 행복했다. 내가 일주일동안 50페이지도 못 나가면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역시 철학은 천재들의 학문인 듯하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원래 천재가 아니라 천재 공부법을 연습했기 때문이라는 데 그 방법이 바로 철학책을 매일 읽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매일 같은 내용을 읽다가 보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요즘 가뜩이나 신경쓰는 것을 소홀히 하는지라 더욱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철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책에 맨 뒤에도 팁이 있는데, 좀 더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안내서라 참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앞으로 꾸준히 철학책을 옆에 끼고 나도 천재의 반열에 오르도록 노력을 해봐야겠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