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늬만 영문학도인 나는,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란 책을 사들였었다. 내가 무슨 심오한 학문을 공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과제로 [시학]을 요약정리하기 위해서 고르고 골랐던 책이었다. 지금 들쳐보니 대충 공부를 했는지 연필로 찍찍 줄이 그어있고, 낙서가 되어 있었다. 뭔가 신기했다. 아~ 내가 이 책을 읽긴 읽었구나~! 이 [스토리텔링의 비밀]이란 책을 받아들기 전엔 [시학]이란 책을 들쳐본 기억이 없었는데 그나마 과제를 하기 위해서란 목적이나마 그 책을 본 적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대학 때 본 책이 있긴 하구나~~~ 대학 때 뭔 일 때문에 그리 바빴었는지 전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무늬만 영문학도, 국문학도인가? 전공이 무색하게도 정말 읽은 책이 없으니 지금에서야 들여다본 [시학]이 생판 처음 본 것으로 오해해도 당연하다. 정말 낙서만 안 되어 있었어도 완전 새책일 거다.

 

어쨌거나 이제서야 들여다 보게 된 [시학]과 [스토리텔링의 비밀]이라는 책을 번갈아 보느라 조금 골치가 아팠다. 아마도 공부 못하는 학생이 꼭 쉬는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공부 안해도 되는 이제서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아둥바둥대는 모습이 좀 우스웠다. 그런데 내가 가진 [시학]은 옛날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용어가 아주 현학적이고 한문체여서 쉽게 알아들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 책에서 [시학]의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해주었으니 망정이지 아마 [시학]만 있었다면 어려웠을게다. 그런데 내가 읽기엔 이 책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리 어려운 용어를 가지고 설명한 것도 아니고, 그리 어려운 내용을 이야기한 것도 아님에도 이상하게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독해력이 평균보다 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참 의외이다. 원래 내가 용어를 정리하는 이론서를 좀 싫어하긴 해도 - 고교시절, 일반사회 때문에 아으~ - 한 문장을 몇 번씩이나 읽게 만들었고, 보통 버스 안에서도 잘 보는데도 이 책만큼은 펜과 색연필을 손에 쥐어가며 공부하듯이 읽어야 했다. 뭐, 내가 평소보다 더 꼼꼼히 읽으려고 했던 것이지도 모르겠지만.

 

읽기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려운 책은 아니다. 그저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설명하다 보면 용어 정리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벌어진 일일 텐데 어느 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얻을 도움이 꽤 있을 듯 싶다. 굳이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소설도 괜찮지 않겠는가. 나는 요즘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어려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감수성이 발달되지 않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말이다. 사실 소설쪽에는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유명한 한 작가가 최고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에 반해서 나도 그와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습작조차 시작하지 않은 터라 글을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시나리오나 소설을 쓰겠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일단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제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긴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는 못했다. 일단 글을 써봐야 알 수 있는 문제들이 더 많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정말 중요한 내용이 많았다. 저자가 말미에 요약해 둔 글을 인용해보겠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내가 '영화 시학'이라고 생각하는 이 개념을 활용하라. 그저 "알았어, 액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거지."라고 말하지 마라. 종이에 적어보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가르친 방식대로 세 문장으로 구성된 작은 이야기를 생각해보라.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만들기 위해 비극적 행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라. 당신이 쓴 모든 극적 행동을 개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구축하고, 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게 하라. 운명의 반전과 발견의 순간을 구축하는 당신만의 방법을 찾아, 그런 순간을 배경이야기에 숨어 있는 비극적 행동에 닿게 하라. 당신이 만든 중인공을 색칠하면서 갈등의 중심에 너무나 가슴 아픈 도덕적 갈등을 심어놓고, 그것을 통하여 주인공의 영혼과 관객들의 영혼이 교감할 수 있게 하라. 시나리오 속에 당신의 독특한 도덕적 세계를 펼치고, 그 속에서 선과 악을 중재할 수 있는 완벽한 인물을 창조하여 서로 버팅기는 두 힘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라. 당신의 주인공이 이 세상의 절대 선을 대변하게 하고, 그 주변에 위대하거나 하찮은 수많은 인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라.

 

이 모든 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나리오론이다. 그가 말한 비극은 불행한 결말을 이야기하는 극이 아니라 '진지한 드라마'를 말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학론을 이용할 수 있다. 드라마는 인물의 행동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그 행동 속에 사상이 있다면 탄탄한 플롯이 가능하다. 그리고 플롯이야말로 드라마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인물의 성격이나 대사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플롯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저자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건강을 유지하고, 영혼으로 글을 써라.

 

잘 나가는 작가들일지라도 유흥으로 자신의 젊음과 체력을 낭비한다면 당연히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지 않겠는가. 할리우드의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을 보고선 내린 저자의 결론이니, 잘 나가는 작가일수록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우선 나는 이 기준을 옆에 딱 붙여놓고 전체적인 플롯이나 짜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