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주향의 열정과 배반, 매혹의 명작 산책
이주향 지음 / 시작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좀더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을 하면 오히려 그 형체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 태초의 모습을 드러낸 연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이 책의 표지가 그러하다. 너무나 모호하고 그렇게 모호하기에 더 정확하게 보이는 이 사진은 열다섯 명의 커플들을 모습을 3개월 동안 촬영한 사진 중 15컷의 사진을 겹쳐 만든 것이라니, 그 노력과 그 아이디어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어찌보면 은밀하고 어찌보면 현란한 표지를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나는 나에겐, 판도라의 상자같은 표지이다. 도대체을 무엇을 형상화한 건지를 항상 묻게 되는, 그리고 원본을 보고 싶다고 요청하게 되는 그러한 판도라의 상자!! 아마도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그 내용 또한 그러하다. 총 33권의 명작들 속에 숨겨진 사랑의 여러 단면을 찬찬히 면면히 살펴보게 해주는 이 책은 이 현란해보이는 어렴풋한 사진의 형체들처럼 까면 깔수록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가 느낀 감상은 그러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주향 교수의 구성진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면서 그녀의 사상과 생각에 동화되어가는 모습은 내게 분명한 경계선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하염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갈 수밖에. 이주향 교수님은 1989년부터 이화여대, 성균관대에서 강의 및 저작 활동을 하셨다는데 난해한 철학 강의를 명쾌하고 재미있게 풀어서 한 인기를 하셨단다. 그래서 1993년에는 한꺼번에 8백 명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었다고. 그리곤 라디오와 온갖 텔레비전에도 타셨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참으로 궁금타. 꼭 실제 그녀의 목소릴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 테다.

 

이 중에서 내 마음을 울린 내용은 이것이다. 그런데 이 중엔 내가 읽어보지도 못한 명작들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책에 빠진 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명작이라고 부르는, 또는 고전이라고 부르는 대작들엔 손을 대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나에게도 명작들과의 산책이 이어지길 바라며, 내가 읽어보지 못했던 명작들 중에서 꼽아보았다. 이광수의 [원효대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자 프란체스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등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는 둘 사이에서 설총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그런데 새로 알게 된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내 마음을 크게 울려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할 만큼 정착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마음을 울린 그 깨달음이 말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그 깨달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내 언어가 미약해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둔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는 사흘동안만 사랑을 하고 서로 갈 길을 갔다. 그 이후부터 원효대사는 왕사라는 신분을 벗어버리고 파계승으로, 복성거사라는 이름으로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의 사이에 들어갔다. 평소 금욕을 통해 속세의 모든 더러운 죄에 벗어나 인간의 모든 고통을 알지 못해서 경건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맛보고 나서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는 그런 수양으로 거칠고 가난한 세속으로 내려간 것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만의 욕망을 위해 안주한 것이 아니라 거친 세속에 내려갈 힘을 얻는 원효에게는, 파계가 파계가 아닐 거다. 이 부분을 보는데 예전에 너무 신기하게 보던 만화책의 한 부분이 생각이 났다. 이정애 작가의 <열왕대전기>라는 만화!! 끝까지는 다 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기독교에서 논란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라 계속 보게 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거기에서 인간의 제왕이 될 키엘이라는 자가 자신이 제왕이 될 자가 아니라 진짜 제왕이 될 자를 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평생 지켰던 금욕을 어기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면서 진정 인간의 희노애락이 무엇인지 깨닫고 인간적인 종교를 만들 것임을 다짐했던 게 기억이 남는다. 그 뒷부분은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키엘에게서 받았던 충격이 그 이후에도 계속 생각났다. 끊을 수 없는 사랑 속에서 피안을 본 원효와 인간적인 욕망에서 깨달음을 얻은 키엘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둘다 고통 속에서, 욕망 속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얻은 사람으로 보여진다.

 

아직 기독교에 대해서도, 불교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는 못해서 기독교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을 만나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원효의 파계를 보면서 그가 과연 진리를 터득했는지 확신하기도 그렇고, 키엘을 보면서 어찌 평가를 해야할지도 헷갈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나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안티크리스트]라는 책에 대한 내용은 정말 내가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할지 아리송한 내용이다. 니체야 '신은 죽었다'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기에 기독교에대해 안티적으로 생각하겠지만 그의 의견에 반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내겐 딜레마인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여자는 뱀이라고 했는데 그 이후엔 그 뱀이 신이라는 말도 한다. 뱀이 신이라는 말에 내가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게 한 것이 아닌가! 말도 안되지~~!! 당근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나무의 실과도 따먹길 바라셨다구..어디까지나 그것을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게 하시려고 했던 것 뿐이야~! - 그렇게 몰아가는 저자의 말에 내가 더 헷갈린다. 니체만도 물리치기 버거운데 말이다. 사실 저자가 생각한 것이 니체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쨌거나 저자는 [안티크리스트]라는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식의 나무(선악과 - 말도 안돼!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 다시 말해 악을 알게 되는 것이 어떻게 인식이야? 좋은 것만 인식해도 되잖아!)를 맛본 것이 죄라면, 원죄라면, 그 원죄는 주인인 삶의 전제조건입니다. 원죄야말로 삶의 출발점인 겁니다. '죄'가 삶인 겁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지력도 짧고 가방끈도 짧고 읽은 책도 별로 없지만 정말 이 부분은 나를 참을 수 없게 한다. '원죄'라는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부정적인 것이니까 듣는 사람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너는 죄인이야! 하는 데 누가 거부감을 안느끼겠어~ 당근 느끼지!!) 그렇다고 말을 왜곡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왠지 저자의 이 부분은 원죄라는 말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달콤한 말로 - 어쨌거나 '교언영색'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나눈군! - 꼬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처음엔 나를 혹하게 했다가 뒷부분엔 나를 영 혼란스럽게 했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작에 나온 사랑의 여러 유형을 새롭게 조명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만점을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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