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키나와 코코로 - 후지타 사유리의 도쿄, 오카나와 감성 방랑기
후지타 사유리 지음, 김지영 외 옮김 / (주)하서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미수다에 나온다는 후지타 사유리라는 사람을 알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TV에서 본 적은 없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느니 하고 들었었는데 그런 그녀가 일본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고 해서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일본을 여행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라고 생각해선 안되는 게, 여행 정보를 제공한다기 보단 사유리의 독특한 내면을 보여주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제도 독특하지 않는가. <후지타 사유리의 도쿄 & 오키나와 감성 방랑기>라니... 이 책을 열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독특하다. 그녀를 처음 보는 나는, 처음 책을 펼쳤을 땐 우와~ 어쩜 이렇게나 아름다운 여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멍하니 빠져들었다. 동양인이긴 하지만 시원스레 뻗어나온 콧망울과 큼직한 눈매에 티 하나 없이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에다 기럭지까지도 길죽하다니...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부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좀더 책장을 넘겨다 보면 에게~ 이게 모야~~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 그녀의 돌출행동에 처음엔 적응이 안 되었었다. 뭐, 물론 촬영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가있겠지만 왠지 그게 그녀에게 일상 모습일 거란 느낌이 드니... 역시 사람은 외모만 보고 판단해선 안돼~~~!! ㅋㅋㅋ 엉뚱하지만 명랑한 그녀의 오키나와 이야기를 들으러 가볼까...
바닥에서 뒹굴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다.
눈을 감고 양손을 올리면
자, 하늘을 만질 수 있어.
부드러운 하늘은
지금 내 양손 안에 있다.
이 하늘을 누구에게 주지?
오키나와는 원래는 '류큐왕국'이라는 나라였었는데 일본 정부에게 진압되어 지금은 일본 땅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일본인이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니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도저히 일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하얀 백사장에 에메랄드빛 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열대과일까지 있어서 완전히 열대지방의 어느 해안 같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봤을 때는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큰 섬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섬이겠거니 했었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일본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진 적도 부근에 있는 섬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역도 일본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년에는 오키나와의 중심 도시인 나하의 90퍼센트가 파괴되었는데 일본 군부가 본토까지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를 방패막이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버려진 돌'이라고 표현한다는데 안타깝다.
고인 물에 비친 구름이 부끄러운 듯이 흔들리고 있다.
조금 전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는 게 거짓말 같다.
그래도 내 샌들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젖은 발끝은 아직 마르지 않았어.
신선한 풀냄새가 피어오른다.
비의 습기가 섞인 풀냄새가 좋아.
오키나와의 날씨는 재미있다.
하늘은 맑은데,
비는 그런 건 내가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지면에 떨어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으며 눈물을 쓰-윽하고 훔쳐내는 사람을 상상하곤 한다.
오키나와에서는 <별모래>라고 불리는 하얀 모래가 있다. 정말 하나하나가 다 별 모양으로 생겼다는데 실은 유공충의 껍질이다. 유공충은 바다에서 떠다니면서 살아가는데 죽으면 하안 색의 별처럼 생긴 유공충의 껍질만이 해안가로 밀려온다고... 허나 멀리 떨어진 섬에서야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지 귀하단다.... 정말 갖고 싶당~~ㅎㅎ 그런데 열대에 가까운 기후 덕에 정말 신기한 먹거리가 많다. 특히 과일을 좋아하는 나는 꼭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어졌다. 과일 먹으러~~ㅋㅋㅋ 실제로 가볼 수나 있을까 싶지만.. 복숭아 향기가 나는 피치파인도 있고 손으로 뜯어먹을 수 있는 스나크파인도 신기하다. 더더군다나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아테모야라는 과일도 있다니...쓰읍... 군침이 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물건은 잃어버리지 않게
이름을 써 놓으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 말을 잘 들어서 가방과 크레용,
그림책과 시게, 물건이란 물건엔
모두 이름을 써 넣었다.
하지만 어제 흘려버린 눈물과
겨울의 하얀 입김,
그 사람을 생각하는 애처로운 마음에는 어떻게 써 넣으면 좋은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 그 때보다 조금 어른이 되어 깨달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름을 써 놓는 것이 아니라
두 팔로 살포시 안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사유리의 감성 방랑기라 그런지 이 책엔 이쁜 말들이 참 많다. 그거 하나만을 가지고도 계속 생각해보고 음미해볼 말들이 있어 감성적인 사람이라면 부담없이, 아니 냉큼 가져오려고 할 것이다. 여기에 조금 소개해 볼까.
하늘에 별이 피어있습니다.
별은 어떤 향기가 날까요.
분명 내가 아직 모르는 향기가 날겁니다.
내 손으로 별을 따고 싶어. 더러워진 이 두 손으로.
달콤한 향기가 나는 별을...
희망의 향기가 나는 별을...
지상에 있는 별은 이미 시들어 버렸어.
전쟁으로 모두 타버렸어.
하늘에는 이렇게 별이 피어있는데
내 손에는 닿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진과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갑자기 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만든 사진이 있었다. 바로 사유리가 꽃밭 옆의 아스팔트 길 위에 벌렁 드러누운 포즈의 사진!!! 표정은 아련하고 상큼하기에 이를 데 없지만 그 꼬락서니가 뭐란 말이냐~~!! 이런 사진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리따운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고 사다리를 타거나 담을 기어올라가는 모습이거나 이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기점으로 반듯하게 엎드려 눕는 모습이거나 토끼옷을 입고 도쿄 지하도를 누비고 있는 모습은 정말 기상천외하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아무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일본 사람들은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저 그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니 정말 신기하다. 사유리도 말하길, 거기가 한국이었다면 핸드폰 사진으로라도 마구 찍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래서 느꼈다. 사유리는 한국을 많이 이해하고 있구나~~~~
오늘 밥은 안경을 끼고 잔다.
꿈이 잘 보이도록.
오늘밤이야말로 꿈에 그가 나왔으면 하고,
창문 밖의 별똥별에게도 빌어 놨고.
빗으로 머리도 곱게 빗었고, 사과 향의 립 밤도 발랐다.
준비 오케이.
그런데... 당신이 내게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잠옷을 입은 채여도 괜찮을까요?
도쿄에서는 그냥 논다. 빠징코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아까 말했듯이 토끼 옷을 입고 활보하기도 하고 세탁기가 집 인 양 들어가보기도 하고 오타쿠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기도 하는 등 엽기적인 그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보다도 내게 강한 인상을 줬던 것은 짤막한 이야기 몇 편이었다. 후기를 보니까 모두 사유리가 썼던 것 같던데 충격적인 소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예를 들어, 철없이 학창 시절을 낭비하는 여고생이야기나 부모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는 아들이야기나 이유없이 불특정 다수를 죽이려드는 한 삐뚤어진 남자이야기,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희생한 창녀이야기.... 사유리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하던데 내가 읽기엔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너무 망가져가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다시금 본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나는 아마도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 눈 앞에만 안 보이면 다른 나라에서나 다른 지역에서나 뭔 사건이 일어나든, 어떤 재해가 발생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다시금 눈을 돌릴까 어쩔까.
사유리가 했던 이야기 중에 이 말이 제일 가슴에 와 닿는다.
세상에 욕을 하는 사람과 욕을 먹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다면, 나는 욕을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왜냐하면 욕을 하는 사람들은 과격한 표현의 말이나 글로 다른 사람을 더럽히고, 그 사람의 가치를 깎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깎기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더럽혀지는 것 또한 본인이다.
결국, 누워서 뱉은 침이 얼굴에 떨어지는 격이다.
한국에서 반일시위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의 국기를 불태우고, 일본을 규탄한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진정 일본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런 행위는 한국 사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한국을 더럽힌다.
왜냐하면 일본의 양심을 일깨우고 일본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과거에 행한 과오에 대한 자발적인 인식뿐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서 이미 더럽혀져 있다.
....(중략)....
외부의 힘에 의해서 더럽혀진 것은 진정 더럽혀진 것이 아니다.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내면의 소리를 외면했을 때, 그 사람은 더러워진다.
자신의 나약함으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진정한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