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와 리리의 철학 모험
혼다 아리아케 지음, 박선영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생각의 힘을 키우는 유쾌한 철학 소설'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철학 소설이다. 그런데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그다지 아름다운 내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는 사실!! 표지를 먼저 봤을 때는 다른 것과 비슷하게 철학에 관한 가르침이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배경이 서양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던 나로서는 정말 뜻밖이었다. 일본인 저자가 쓴 소설답게 이 소설에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는 비행들이 자주 목격된다. 예를 들어,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의 자살, 고등학생들의 원조교제, 사이비 종교의 확산, 고등학생들의 살인과 친족살해 등 말세야~ 말세~란 말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보통 소설하면 좀더 아름답거나 성장하게끔 그려지지 않나. 어쨌거나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하기는 한다. 그 상황이 내겐 너무 생소해보였지만 말이다. 물론 철학이란 학문이 현실에서 어떤 것을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가야할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해서 혼란스런 상황을 겪게 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만 그 현실이, 여기에서 배경이 되는 일본의 현실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이 나를 경악하게 했다.

 

주인공 미즈사와 미키(애칭 미미)와 린나이 료카(애칭 리리), 이치하시 모모에(애칭 모모)는 고등학교 같은 반 학생이다. 그 아이들은 데즈카 고사쿠(애칭 뎃코) 윤리 선생님의 출현으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 요것이 이 소설의 주요 골자인데 이 아이들의 주변에 일어난 사건들이 참 대~단하다. 미미의 아버지는 뺑소니를 당해서 식물인간이 되어 계시고, 리리의 오빠는 갑자기 옛날 시를 남기고 자살해버리고, 미미와 리리의 어머니들은 현실에 닥쳐온 시련에 사이비 종교에 빠져버리고, 모모는 재미삼아 한번 했던 원조교제 때문에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이 중 한 가지만 가지고도 이야기할 것이 많이 있을 텐데 여기에는 그런 일이 짬뽕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주인공들이 금방 털고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 부터가 나랑은 정서에 전혀 맞지 않았다. 철학이라는 게 꼭 그렇게 심각한 일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야하는 거야...? 물론 본인의 일이었을 때 더 가깝게 여기고 진지하게 사고하게 되기에 그런 상황을 설정했겠지만 나로선 너무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까 밝은 노랑색 표지나 캐릭터, '철학 모험'이라는 제목이 정말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꼭 표지만 보면 서양 학생들이 연상이 되니... 차라리 일본 교복을 입은 주인공들과 뎃코가 소설 속에 나왔던 장면처럼 케이크를 먹으면서 담소하는 모양을 표현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진지한 학생들 사이에 코믹한 표정의 뎃코 선생을 끼워넣고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하면 안되었을까. 리리의 아리따운 몸매와 이지적인 얼굴, 미미의 귀엽고 온화한 표정, 모모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그려넣었다면, 그리고 밝은 배경보다는 약간 어둡게 아니면 그냥 교실 분위기가 나게끔 색채를 바꾸었다면, 아니면 학교 상담실이나 교무실로 하면 더 내용과 긴밀해지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제목도 바꿔야 한다. '모험'은 무슨 개뿔~ 읽으면서 전혀 '모험'같지 않았다. '악몽'이라면 또 모를까. 자기 아빠는 식물인간에,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동생은 자퇴를 하고, 친구의 오빠는 자살에, 동급생은 원조교제에 휘말리는 현상을 '모험'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완전 사이코 같다. 나보고 작명을 하라면 '미미와 리리의'라는 말은 빼버릴거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두 사람으로 한정시키는 것이 무리가 있다. 실제 주인공은 미미뿐이기도 하고. 그럼, 제목은 뭐가 좋을까? 고등학생이 삶을 바라보는 방법? 선생님과 함께 나누는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윤리 선생 뎃코와 함께하는 일상 바라보기? 내가 보기엔 마지막 것이 가장 그럴싸하다. 은행나무 출판사 그렇게 안 봤는데...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만들었겠지만 정말 표지와 내용의 괴리감이 커서 당혹스러울 뿐이다. 평소 철학을 좋아하는 내가 책 내용은 하나도 하지도 않고 이렇게 표지이야기로만 한없이 주절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다 한번에 죽어버리지 않는다면 사실 결론이란 건 없지 않을까. 인생이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주어진 상황은 절대 변하지 않았으니. 그저 자살에 대해, 사이비 종교에 대해, 살인에 대해, 사형에 대해, 원조교제에 대해,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을 뿐이다. 그로써 혼란했던 머릿속을 정리해보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대신 그 상황을 정리해주거나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바로 내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철학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다. 미미의 애인인 톰이 말했듯, 철학은 찻잔의 내용에 관심을 두지 않고 찻잔에만 관심을 두는 미련한 짓일지는 몰라도 찻잔이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찻잔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로써 바꿀 수 있다면 아마도 찻잔에 담긴 내용물도 바뀌지 않을까.

 

참고로 자살에 대해 말하자면, 미미와 리리는 자살이 윤리적인가, 비윤리적인가에 대해 뎃코 선생에게 물었다. 실제로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소동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살은 중요한 화두이다. 보통 자살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예상하는데 실제로 리리의 오빠는 자살할 이유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법대를 다니는 촉망받는 기대주였고 사려깊은 오빠였으며 철학에도 관심이 많을 정도로 속이 깊었으며 아버지가 유명 배우이기에 돈 걱정도 별로 없고 아버지와 모델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외모도 상당히 근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살을 한 것은 바로 무엇때문이었을까. 그가 유서로 남긴 것은 메이지 시대 즉 140년 전 고등학생인 후지무라 미사오의 시였다. 후지무라 미사오는 열일곱의 나이에 이 시를 적어놓고 게곤 폭포에 몸을 날려 자살했기에 그 유언은 철학적 고뇌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라고. <암두지감>이라고 불리는 이 시는 지금 내가 봐도 철학적인 고뇌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득한 하늘과 땅

머나먼 과거와 현재

나 5척의 작은 몸으로 이 큰 신비를 풀려 하노니

호레이쇼의 철학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찾을 수 없도다

만유의 진상은 오직 한 마디로 말하노니 불가해라

나 이 괴로움을 품고 번민한 끝에 드디어 죽음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미 바위 위에 서 있으며 가슴속 일말의 불안도 없도다

처음으로 깨닫는다

크나큰 비관은 크나큰 낙관과 일치하는 것임을

 

허나 뎃코 선생은 자살에 대해 참으로 명쾌하게 해석해 주신다. '만유의 진상'을 찾아내려는 사람이 단지 16년~17년 밖에는 살아보지 못했으면서 얼마나 많이 번민하고 고뇌했냐는 것이다. 좀더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뇌해야하지 않을까.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완성한 것이 마흔이 넘어서라는데 그 정도만큼은 살아보고서야 인생에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뎃코 선생은 자유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인이고 자기 자살로 남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면 자살은 윤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래도 만년 정도는 살아보라는 것이다. 뎃코 선생이 2학기 때 집안 사정상 학교 휴직하게 되었을 때 한 말이 인상에 깊다.

 

"너희들 중 누군가가 말이다,

혹시라도 자살하고 싶어진다거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졌을 때, 삶과 죽음이 걸린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말이다.

그때는 부디 이 데즈카 선생의 얼굴을 떠올려 주기 바란다. 전화 한 통이라도 좋으니 내게 연락을 해다오.

너희들의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 전에, 최후의 단 5분이라도 좋으니 나와 이야기할 시간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여전히 누군가 죽이고 싶다면 날 죽여도 좋다.

그 정도는 20년 전 윤리 선생을 시작한 그날부터 충분히 각오하고 있으니까. 알겠나?

그럼, 마무리로 오늘의 명언 한 마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살아 보자. 그것이 인생이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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