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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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란 신영복 선생님과 여섯 명쯤 되는 초등학생들의 모임이름이다. 이른 봄날 서오릉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여섯 명의 꼬마 덩어리와의 만남과 그 후에 가졌던 만남을 회상해서 적은 글이 바로 이 <청구회 추억>이다. 사실 하얀 바탕에 아리따운 분홍빛 꽃이 여기 저기 기웃대는 표지만큼이나 아름다운 글이지만 이 글을 썼을 당시는 신영복 선생님이 사형을 언도받았을 때였기에 더욱 가슴 아리도록 아름답다.

 

전체적인 글은 별로 길지 않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면 상상하고 다시 반복하며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이 책을 붙잡고 재밌다를 연발하며 읽었더랬다. 숙명여대 교수(강사?)였던 그가 서울대학교 문학회원들의 초청으로 서오릉으로 봄나들이를 가는 길에 눈에 띄였던 여섯 명의 꼬마 덩어리를 만나면서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터보고자 시작했던 것이 '청구회추억'의 시작이다. 여기서 인상깊었던 것은 신영복 선생님의 자랑이다. 나는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13쪽)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를 존중해주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어서 좋았다. 그럼 그 비법을 들어볼까? 중요한 것은 '첫 대화'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다.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사실은 서로의 거리를 때에 따라서는 몇 년씩이나 당겨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꼬마들에게 던지는 첫 마디는 반드시 대답을 구하는, 그리고 대답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13쪽) 우와~ 그런 비법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는 몰라도 생각해보면 으레 그럴 듯하다. 그러면서 주의해야 할 점도 알려준다. 만일 "얘, 너 이름이 뭐냐?"라는 첫 마디를 던진다면 그들로서는 우선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불쾌감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뱅글뱅글 돌아가기만 할 뿐 결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13쪽) 라는 것이다. 우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나도 간혹 모르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곤 하는데 항상 이름을 물어보는 수준에서 머물러서 그랬는지 대화가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물론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이 말을 걸면 피하라는 가정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님께서 그 아이들 사이에서 끼어서 하루를 보내고자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는데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거나 경계를 하는 것 같아 좀 더 앞서 걸어갔더랜다. 그러면서 날린 첫마디는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14쪽)이었다. 대답하기에도 부담이 없고 더군나 무언가를 도와준다는 자긍심까지 심어질 수 있는 질문이니 역시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충분히 알고 계신 것 같다. 그렇게 만나 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고 서로 연락하자고 약속까지 했지만 바쁜 일정에 까맣게 잊어버린 신영복 선생님께 여섯 꼬마들의 편지가 온다. 그제서야 그 꼬마들을 기억해낸 신영복 선생님은 자신이 그저 '장난'으로 아이들과 말을 텄음을 반성하고 부랴부랴 약속을 정해 토요일에 만나기로 한다. 그래서 이 청구회라는 모임이 생긴 것이다.

 

뭐, 크나큰 일을 만들어서 시도한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모임도 아닌 그저 모이면 자기이야기하고 돌아가면서 책을 읽고 의견말하고.. 그저 '논 것'이 전부인 모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신영복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게 요즘 유행하고 있는 '멘토'의 역할을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인격적으로 만나 속내를 드러내면서 어려움이나 기쁨을 나누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고 뭘까. 어렵고 힘든 살림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진학을 하지 못하는 그런 아이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한 명 있다는 것, 바로 그것만큼 든든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가난했지만 선생님을 배려해서 신영복 선생님의 집에서 회식하는 날 다 같이 오지 않았던 것은. 가난하지만 자존심과 배려심이 있었던 그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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