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이제까지 내가 보았던 청소년소설 - 난 상당히 청소년소설을 좋아한다^^ - 중에서 단연 스릴 만점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스릴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평가이기는 하지만^^a

어쨌거나 이 책은 여타의 청소년소설 같이 학창시절에 일어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이 노숙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말하자면 노숙일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거리에서 살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이 아주 평범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다른 청소년소설과는 다르게 스릴감이 느껴졌던 이유는 아무래도 범인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교차되어있는 소설방식 때문일거다. 처음 몇장을 읽을 때만해도 [근무 일지1], [근무 일지2]라고 적혀 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점차 읽다보니가 거리의 아이인 링크의 이야기와 그런 그들을 사라지게 하는 쉘터('쉼터'라는 뜻이란다...어떤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알만 하지 않은가...^^;)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타나고 그것을 표시해주는 종이 디자인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와~ 그런 센스를 발휘해주시다니, 출판사의 이름처럼 역시 센스가 넘쳐부러~

 

그렇게 감을 익히고 나니 뒷내용이 알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한번에 쭉~ 읽어내려가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끊어읽기를 했는데, - 여간해서는 끊어읽기를 하지 않는 나로선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연결이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복잡한 플롯이 있거나 등장인물이 방대하거나 하질 않아서 그런 거지만, 나로선 너무 좋았다. 주요등장인물은 딱 네 명이다. 첫째로 주인공 링크, 그를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친구 진저, 그런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연쇄살인범 쉘터, 그리고 링크의 첫사랑 게일....

 

다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아이들이다. 쉘터 빼곤^^ (이 눈웃음의 의미는 '양해') 그런 아이들은 정부의 보조를 받지 못한다. 왜냐 자발적으로 나왔으니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새아빠가 눈만 마주치기만 하면 못쓸 놈이라느니 버러지 같다느니 부모나 누나의 등골을 뽑아먹는 놈이니 여러 잔소릴 입에 달고 사는데... 이런 정신적인 학대를 견딜 수 있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겨우 열네 살 밖에 안된 녀석이 말이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새아빠를 막아줄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지 못한 어머니를 둔 링크는 더이상의 선택이 없을 수 밖에. 그런데 그런 그가 갈 곳이란 과연...............?

 

노숙생활을 하면 제대로 먹기도 자지 못할 거라고 생각들 한다. 그리고 씻는 거야 사치겠지. 하지만 정말 그 누구가 1월의 도시에서 길바닥에 자는 것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지하철을 탈 일이 없는 나는 일년에 거의 몇 번 못보지만 지하철로 통학이든 통근이든 아니면 밖에 나갈 때 한번쯤은 다 봤을 것이다. 지하차도에 웅크려 자고 있는 노숙자를 말이다. 차가운 타일 위를 신문지나 박스만 깔고 떨면서 자는 삶이란 과연 어떤 걸까? 링크가 말하길, 잠도 제대로 못자는 삶이라고 한다. 그나마 한국은 지하차도라도 있지만 런던에 있는 링크는 가게가 문 닫을 때까지 거리를 배회하다가 문을 닫으면 오목하게 들어가있는 장소를 잽싸게 차지해서 눈을 좀 붙이는데 가방을 차지하려고 칼을 꽂고 달아나는 치도 있고 자리를 뺏으러 다가오는 치도 있기에 절대 깊게 잘 수 없다더라. 그리고 차가운 시멘바닥에 누우면 온몸 여기저기가 다 멍이 든다니...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아, 그리고 추위와의 싸움, 침대에서라도,

찬 발로 잠을 청한 경험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 거다.

발이 따뜻하지 않으면 금방 잠에서 깨고 만다. 여기까지는 그저 몇 가지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굶주림으로 생긴 위경련, 감기로 인한 두통, 치통, 벼룩과 이 얘기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향수병, 우울증, 절망감은 말해 본들 무엇할까? 그런 처지에 불가능한 일인 줄 뻔히 알면서 여자 친구를 마라는 마음은 또 어떤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사실상 일상적인 활동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버린, 존재 자체가 무시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기분이 어떨지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p. 70)

 

우와~ 노숙이라는 게 밖에서 자는 것이라고만, 아주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내가 아주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것이 사회에서 아예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라니... 아, 그런 거였구나!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전혀 없었다.

 

런던에 있는 링크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과는 조금 상황이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빈곤 때문에 아이들이 가출을 하게 되는 것만은 맞다. 링크가 학대당할 때 돈이 있었다면 어머니는 새아빠를 쫓아냈을 거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해줄 수가 없기에 자신만 살려고 아이를 버린 것이지... 이렇게 말하면 정말 매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른이란 그렇게 잔인한 거다. 자기가 낳은 자식조차 내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아닌가?

 

TV에서 가출청소년에 대해서 보도한 것을 보았을 땐 좀 생각없다 여겼었다. 세상이 얼마나 힘든 곳인데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집을 뛰쳐나갈 수가 있냐고. 가출해서 혼숙하면서 단란주점에서 돈을 벌거나, 아니면 아예 지하차도 같은 데서 잠을 청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무섭다~ 생각했다. 치, 그 아이들이 나한테 무슨 해코지를 했다고 무서워하긴...

 

그런데 그 아이들도 링크처럼 많은 생각을 하고 견디기가 어려우니까 뛰쳐나왔겠지. 밖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현실의 모습만 보니까. 그런데 그것이 그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가 견디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참을 줄 모른다고, 집이 가난하면 분수껏 살아야하는데 탐내하기만 한다고 혼낼 수 있을까. 그걸 누구에게 보고 배운 걸까. 엄마, 아빠, 아닌가.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편모나 편부 가정에서 자라났기에 알차고 따뜻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만큼은 분명한 걸거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의 부모가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지는 않았으니. 자기 자식들이 잘못 자라길 바라지는 않았을테니.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여기서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잘못이 어디에서 있었는지가 확인되면 그 부분을 잡아나가면 되니까 그런거다. 그런데 보니까 가해자는 참 모호한데 피해자는 분명하니......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잡아나가야 될지 참...

 

나는 희망한다.

루이즈와 개빈이 기사를 쓸 때, 진실을 담아줄 것을 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편견을 벗고 진실을 바라보기를 희망하며,

조금이나마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난 그저 내가 아직 이곳에 있을 때,

희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p.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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